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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Oct 10. 2022

써야 산다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짐을 싼다. 며칠 강릉에 가 있을 예정이다. 작년 오월의 봄날, 강릉에 있는 동안 참 좋았다. 그때는 형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갔다면, 이번에는 오직 글만 쓰기 위해 간다. 나처럼 새벽잠이 없는 사람에게 강릉의 아침 풍경이란 얼마나 축복인가. 좀처럼 기적을 믿지 않고, 기적이 없는 것이 기적이라고 믿고 사는 나에게 강릉은 마침 청승 떨기에 딱 좋은 최적의 장소이다. 그곳에는 고요와 싸워도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적요로움이 있고, 조금만 마음먹고 미친 척하면 금세 문장 몇 줄을 에누리 없이 안겨주는 따뜻한 추위가 있다. 새벽이면 이마에 찬 공기를 몰며 산책을 하고, 나른한 점심때가 되면 어이쿠 벌써 끼니를 놓쳤네 하며, 동해안의 수평선을 잡아넣은 컵라면도 먹을 예정이다. 저녁에는 오늘이 절기상 '소한'(小寒)이었구나 손에 입김 호호 불어가며 낙서도 하고, 누구도 마음 춥지 않도록 속눈썹 하나를 몰래 뽑아 모래사장에 묻어둘 예정이다. 그리고 작년 봄에 점 찍어 놓았던 식당 몇 군데에 들러 눈치 보지 않고 아껴둔 돈도 쓸 예정이다. 그래 나는 써야 산다. 써야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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