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킬리만자로를 등반한 일이 있다. 해발 5,895m의 킬리만자로에서는 4계절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여름에서 시작해 봄, 가을을 거쳐 산 정상에서는 한겨울의 빙하를 볼 수 있다.
고도 3,500m이상이 되면 산소 부족으로 식물도 자라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산소가 부족해지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어지럼증과 구토를 유발하는 고산병에 걸리게 된다. 정상적인 고도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래도 비유하자면, 주량의 두 세배쯤 더 먹은 다음날 겪을 수 있는 고통이 고산증과 비슷하다. 두통으로 어지럽고 울렁거림으로 속이 매스껍다. 이때 유일한 치료는 산소공급을 하는 것인데 방법은 물을 마시는 것 뿐이다. 울렁대고 매스꺼운 속은 위로 아래로 쏟고 비워내면서 편안해지기를 바라지만, 산소공급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물을 마셔야 했다. 들이붓고 다시 쏟아내고를 반복했다. 살기 위해 마셨고 먹어야 살 수 있었다.
사람들간의 관계, 소통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대개 ‘동(同)’ 자를 좋아한다. 동문, 동창, 동기 등 나와 비슷한 사람, 친한 사람, 잘 아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 결국 ‘다른’사람과 소통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말이다.
사람 사이에 관계는 어렵지만 노력해야 하고, 어색하지만 어울려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있듯이 어울리고 부딪히며 상대를 통해 성장하게 된다.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사람을 통해 위로받기도 한다. 이것이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고산증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산소를 공급받는 것이고 그것을 빨리 회복하게 만드는 것은 체력이다.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물을 마시고 산소를 공급해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고산증에 시달리며 5일 동안 오르는 킬리만자로는 여행이 아닌 생존에 가까웠다. 살기 위해 먹고 고통을 덜기 위해 마셨다. 그때만큼 운동하지 않은 몸이 원망스러웠던 때가 없었다.
“보기에 좋은 몸이 아닌, 마음먹은 바를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으면서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체력을 가진 몸이 진짜 완벽한 몸이다.” 『몸이 답이다(새라의숲, 2018)』
원하는 일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몸, 충격을 받아도 빠른 시간에 회복이 가능한 몸,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이 되어야 한다. 체력이 강해야 내 몸이 편안하고 내 몸이 편해야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에 여유로울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작은 길이 있다고 한다. 그 길은 너무 좁아서 혼자서 걸어야 하는데, 그 길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면 너른 빈터가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좁은 길을 홀로 걸어온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 길은 작은 통로, 소통이라고 부른다.
외길을 걷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내 몸이 건강하고 편안해야 한다. 그래야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씩씩하게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