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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04. 2021

#31. Love line...(1부)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31. Love line...(1부)


1:8 수업시간에 프랭크 선생이 카사베르데(Casaverde)라는 스테이크 전문점을 소개

해 줬다. 꽤 오래된 식당인데 맛있고 양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백립(Pork Baby

Back Rib)은 남자도 혼자 다 먹기 힘들 정도로 양이 많고 쇠고기 스테이크도 웬만한

사람은 다 못 먹을 정도로 크다고 했다. 맛도 좋아서 손님이 항상 많은 식당이라고 꼭

가보라고 한다.


주말에 카사베르데 갈 사람 모집을 했다. 그래 봐야 내가 꼬일 수 있는 사람은 넬리아

수업 팀 밖에 없다. 같이 가자고 했더니 다들 바쁘단다.

"주말에 '카사베르데' 갈래?"라고 했더니, 모두 "아직 거기도 안 가봤냐?"며 피식거린다.

내가 사겠다고 해도 자기들은 가봤으니 꼭 가보라는 말만 한다.  

스테이크 맛있으니 혼자라도 가서 먹고 오라고 덧붙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스캇이 “형, 요새 '하나'하고 자주 놀잖아, 하나 하고 같이 가요. 

시커먼 놈들하고 가면 뭐 재미가 있겠어요?”한다.

나는 “야, 밥을 뭐 재미로 먹냐?”하고 말았다.


이제 하나야 오가며 부딪히면 내가 유일하게 말을 트는 딱 한 명뿐인 여학생이기는 하지만 

단 둘이 어딜 갈 정도의 사이는 아니다. 지난번 유키와 함께 맥주를 마신 뒤 가끔 식당이나 

휴게실 또는 로비에서 마주치면 잠깐씩 대화를 나누는데 그리 가깝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스캇이 내가 하나와 이야기하는 장면을 몇 번 본 모양이었다.


토요일이 되어 오전에 수영을 다녀와서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갔더니 '하나'가 넓은 식당에서 

혼자 점심밥을 먹고 있다.


-나    : 와, 학원에 진짜 사람 없나 보네, 너 혼자 있냐?

-하나 : 오늘 아침에 다들 ‘보홀 섬’으로 여행 갔어요. 안 간 사람들은 외출했나 봐요.

          내일까진 이럴 거 같은데요.

-나    : 넌 보홀 왜 안 갔어?

-하나 : 전 그렇게 여럿이 여행 다니는 거 재미없어요.

-나    : 그럼 어떻게 다니고 싶은데?

-하나 : 둘이나 셋이 좋죠. 혼자도 나쁘지 않고. 10명 넘게 같이 가는 건 별로예요.

-나    : 너 사교 성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

-하나 : ㅎㅎㅎ... 글쎄요. 아저씨 하고 놀아주는 거 보면 저 사교성 괜찮은 거 같은데?

-나    : ㅎㅎㅎㅎ... 유키는?

-하나 : 유키 언니는 다이빙 갔어요. 매주 가는 거 같아요.

-나    : 넌 어디 외출할 계획 없어?

-하나 : 그냥 학원에서 영화나 보고 있으려고요.

-나    : 그래? 음... 내일도 학원에 사람 없을 거 같은데,

          나하고 스테이크나 먹으러 갈래?

-하나 : 어디요? ‘카사베르데’ 요?

-나    : 어? 너도 거기 가 봤냐?

-하나 : 아뇨, 다들 거기 맛있다고 하던데 가보지는 못했어요.

-나    :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내일 같이 갈래? 혼자 가긴 그렇다.

-하나 : 그러죠 뭐. 내일 점심때 갈까요?

-나    : 그래, 내일 점심때 만나자 로비에서 11시.

-하나 : 네, 유키 언니한테도 같이 가자고 말해 볼게요.

-나    : 어?... 응.....


카사베르데 가는 일이 너무 쉽게 해결됐다. 방으로 돌아와서 프랭크가 그려준 약도를 꺼내서

내일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왜 그런지 기분이 묘해졌다. 내일 유키가 못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것이다.

“기분 참 묘하네.”하는 생각을 하면서,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노래를 열심히 불러 젖혔다.


다음 날 스캇과 둘이서 아침밥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하나가 들어온다.

“아저씨, 유키 언니 아침에 다이빙 갔어요.

어젯밤에 말했더니 오늘 다이빙 약속이 있다고 하네요.

미안하다면서 다음에 같이 가재요.

우리는 11시에 로비에서 만나면 되죠?” 이런다.


내가 “응..” 했더니,

“그럼 나중에 봐요.”하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옆에 있던 스캇이 날 돌아보며, “형 성공했네...ㅋㅋㅋ” 이런다.

“뭘 성공해? 너도 같이 갈래?” 하니,

“내가 거길 왜 가?” 이런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약도를 다시 확인하고 기타를 잡았다.

어젯밤 하고 다르게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났다.


11시가 가까워서 옷을 깨끗하게 입고 로비로 내려갔더니 잠시 후 하나가 내려왔다. 

파스텔 톤 셔츠에 발목이 보이는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소에는 긴 생머리를 목 뒤에서 묶는데 오늘은 뒷머리를 좀 더 위로 묶어서 머리카락이 말총처럼

목 뒤로 흘렀다. 덕분에 하얀 목과 귀가 드러났다. 그리고 귓불에는 1cm 정도 되는 조그만 방울이

달려 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평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나    : 안경은?

-하나 : 컨택트 랜즈 했어요, 선글라스를 껴야 할 거 같아서요.

-나    : 넌, 화장 안 하니?

-하나 : 화장한 거예요. 안 한 거 같아 보여요?

-나    : 한 건가?

-하나 : ㅎㅎㅎㅎ.. 아저씨가 몰라서 그래요. 화장 안 하는 여자가 어딨 어요?

          티 안 나게 다 하죠. 오늘 화장 잘 먹었나 보네...ㅎㅎㅎ


나는 프랭크 선생이 그려준 약도대로 ‘카사베르데’를 찾아갔다.

택시 기사가 모르는 척하고 동네를 빙빙 돌아서 시간은 좀 걸렸지만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다.

현지 레스토랑에 오면 메뉴 보는 것부터 골치가 아프다.

뭘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나가 내게 메인 메뉴와 음료를 물어보더니 웨이터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나는 프랭크가 알려준 대로 백립(Pork Baby Back Rib)을 시켰고, 하나는 서프엔 터프(Surf & Turf)라는 쇠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다. 내가 파스타를 덤으로 하나 더 시켰다. 식당에는 손님이 많았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며 20분 이상 기다려야  할 거라고 음료를 먼저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음식을 기다리며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음에도

지루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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