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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05. 2021

#32. Love line...(2부)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32. Love line...(2부)



프랭크의 말처럼 ‘카사베르데’는 음식의 양이 정말 많았다. 

내가 시킨 백립(Baby Back Rib)은 아기돼지의 갈비가 접시 밖으로 삐져 나갈 정도였다. 

그걸 보고 둘이서 키득키득 웃었다. 하나가 시킨  스테이크도 꽤 큰 고기 덩어리가 두 개나 있었다.

우리는 음식을 반씩 나눠서 맛을 봤다. 스테이크도 맛있었고, 백립도 맛이 괜찮았다.

그런데 파스타까지 먹자니 둘이 먹기는 양이 너무 많았다. 4명이 먹어도 될 정도였다.  


“야, 우리 이거 다 못 먹을 거 같은데?”하고 말했더니,  

하나가 결연한 표정으로  “다 먹을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ㅎㅎ” 한다.


“야 그래도 이거 너무 많지 않냐?” 했더니, “아빠가 음식 남기면 안 된다고 했어요.

다 먹을 거예요...ㅎㅎㅎ” 한다. 나는 하나의 그런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정말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음식을 다 먹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정말 맛이 있었다. 계산을 하는데 음식의 양이나 질에 비해서

가격이 많이 쌌다. 한국이었으면 돈이 꽤 나왔을 텐데, 음료를 포함해도 두 사람의

식사비가 4만 원이 안 됐다. 


내가 계산을 하려 하자 하나가 굳이 밥 값을 내겠다고 했다. 

내가 가자고  했으니 내가 내겠다고 했더니,  

잠시 날 빤히 쳐다보더니 “그럼, 나가서 맛있는 커피 제가 살게요.

그리고 택시비도 제가 낼 거예요. 아셨죠?” 한다.


우리는 학원 근처로 와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숍에 앉으니 배가 너무 불러서 제대로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야, 그걸 다 먹다니 우리 정말 미친 거 같다. 

너 배 안 부르냐?” 하고 물었더니, 

“아가씨한테 배부르냐고 물으면 어떻게 해요?...ㅎㅎㅎ..” 하며 웃는다.  


“왜? 아가씨는 배부르면 안 되냐?” 하고 물었더니, 

“당연히 안 되죠.”하며 또 웃는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따라 웃었다. 한 방 맞은 기분이었지만 유쾌했다. 

이런 기분을 느껴 본 것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하나는 웃음이 참 헤펐다. 말끝마다 항상 웃음이 따라다닌다. 

"너 참 많이 웃는 거 알고 있니?” 하고 물었더니, 

“네, 웃음이 많아서 큰 일이에요. 쓸데없이 잘 웃으니까 곤란할 때도 많아요.” 이런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걸어서 학원으로 돌아왔다. 

시계가 오후 4시가 다 되어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에 식당에 갔더니 스캇, 마틴, 맥스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옆자리에 앉자 스캇이 입을 열었다. 


-스캇 : 오늘 데이트 재밌었어요?

-맥스 : 으잉, 무슨 데이트?

-마틴 : 형 오늘 하나 하고 ‘카사베르데’ 갔었데.

-맥스 : 카사베르데, 좋지?

-나    : 니들은 그런데 언제 가봤냐?

-마틴 : 에이, 우리는 벌써 다 가봤지. 형은 만날 학원에만 있으니까 그렇잖아요.

          형도 좀 다녀요. 너무 학원에만 있지 말고


-스캇 : 오늘 재밌었어요? 하나 하고 하루 종일 둘이 다녔잖아?

-맥스 : 뭐? 둘만 갔었어? 이야~ 형님 오늘 미인하고 데이트했네.

-나    : 넌 하나가 예쁘다고 생각하냐?


-맥스 : 전, 그런 스타일이 좋아요. 요새 애들 같지 않잖아요.

-마틴 : 요새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맥스 : 요새 애들은 전부 말라가지고 가슴도 없고, 엉덩이도 없고 그렇잖아요.

         그러면서 그게 섹시한 건 줄 알고. 난 그런 거 싫어요.

-마틴 : 야, 이건 또 뭔 소리래? 

-맥스 : 전 하나 같은 스타일이 좋아요, 단정하고 품위 있잖아요. 

          게다가 글래머고... ㅋㅋㅋ

-마틴 : 야! 니가 형들하고만 다녀서 그런 스타일 좋아하는 거야.

          너 학교에서도 나이 든 사람들하고만 놀지?


-나    : 하나 하고 사귀어 보지 그러냐?


-맥스 : 제가 하나 스타일이 좋다고 했지 걔가 좋다는 건 아니잖아요.

         저 한국에 여자 친구 있어요.

-마틴 : 여자 친구 같은 소리 하네, 너 만날 밤마다 어디 가냐?

         어제도 1시 넘어서 들어왔지?

-맥스 :  여기서는 한국 사람 안 만날 거예요 현지 사람을 만나야 

           공부도 되고 비밀도 보장되고...

-마틴 : 공부 같은 소리 하네, 다른 게 중요하겠지!

(남자들이라니...)


갑자기 스캇이 “포니테일 하니까 섹시하던데?”하고 끼어든다.

“'포니테일'이 뭐야?" 하고 내가 물었더니,


"머리 묶은 거 말하는 거예요. 그런 것도 몰라요?" 하고 마틴이 말한다.

"그건 또 언제 봤냐?”하고 내가 묻자.


“내가 방 안에 누워 있어도 천리를 봅니다....”하며, 스캇이 큭큭 거렸다.

“섹시했나? 나는 그런 거 모르겠던데?”라고 대답했다.


방으로 오며 생각해 보니, 오늘 하나가 평소하고 느낌이 달라 보였던 게 목선이 

보여서였다는 걸 알았다. "스타일을 조금만 바꿔도 사람이 달라 보이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캇의 방은 학원 현관이 보이는 쪽으로 창문이 나 있다. 아마도 

스캇은 나와 하나가 택시 타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휴게실에서 한참을 떠들면서 놀았는데도 하나는 저녁을 먹으러 올라오지 않았다. 

"과식으로 속이 안 좋은 게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됐다. 그 많은 걸 둘이서 다 먹었으니

속이 안 좋을 만도 하다. 사실 나도 속이 좋지 않아서 이미 소화제를 먹었다. 

약을 안 먹었으면 나도 저녁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식당을 나와서 방으로 가는 길에 여자 기숙사 층을 지나며, 

소화제가 필요하냐는 문자라도 보낼까? 아니면, 방으로 찾아가 괜찮은지 노크라도 해 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이런 일로 여학생 기숙사를 기웃거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답답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뒤로 나는 하나와 식당이나 휴게실에서 마주치면 같이 밥을 먹거나 잡담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일이 많지는 않았다. 하나 주변에는 또래의 학생들이 항상 있었고 내 주위에는 넬리아 수업 

멤버들이나 나이 많은 학생들이 함께 있어서 둘이 대화를 길게 할 만한 기회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학원 내에는 꽤 많은 러브라인이 형성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도 3 커플 이상이다.

한국에서부터 같이 와서 공부하는 커플도 있고 여기 와서 눈이 맞아 사귀는 경우도 있다. 

간혹 선생과 학생이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일은 보지 못했다. 

나는 이런 일에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맥스 말로는 꽤 많은 학생들이 밖에서 만난다고 했다.


그렇게 만나다 보면 지들끼리 삼각관계 사각관계로 역이기도 해서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생긴다고 했다.

젊은 남녀가 한 건물에서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니 특별한 일도 아니다 싶었다. 한국보다 눈치 볼일이

없으니 확실히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 것이다.


이렇게 애매한 일상이 흘러가던 중 ‘탐’이라는 녀석이 학원에 들어왔다. 

키가 크고 몸이 건장한 친구였다. 스물일곱 살의 전직 헬스 트레이너라고 소개했는데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해서 입학식 때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를 기억하고 싶으면 ‘탐 크루즈’를 떠올리라며 농담을

했는데 별로 웃기지 않았다. 


탐 크루즈와는 다르게 곱슬머리에 피부가 하얗고 덩치가 컸으며 말이 어눌했다. 

그리 정이 가는 외모는 아니었고 웃음을 실실 흘리는 게 뭔가 삐딱해 보였다. 

이 녀석이 학원에 온 후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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