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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06. 2021

#33. Love line...(3부)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33. Love line...(3부)


탐이 잡스런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다. 

영어를 못해서 엉뚱한 소리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한국말도 

이상하게 해서 수업 분위기를 많이 린다고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같이 수업하려는 

학생이 없어서 1:4 수업 선생이 골치 아파한다고 했다. 신입생들을 같이 넣으면 며칠 

지나면 반을 바꿔 달라고 불만을 제기해서 사무실도 골치 아파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술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끼어서 술을 마시는데 술값 내는 일이 없고, 

쉬는 시간에는 아무에게나 담배를 얻어 피우고 다니는데 자기보다 이가 어린 학생들에게는 

자기 거 마냥 담배를 뺏어 피운다고 했다. 넉살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했고 

그렇다 보니 당하는 사람들도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이런 일로 큰 소리가 

나면 서로 불편하니 모두가 쉬쉬하고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맥스 말로는 졸업식이 끝나고 하는 회식에는 자기 팀이 아니라도 꼭 끼어서 얻어먹고 다니는데 

술버릇이 고약해서 회식자리에서 실수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가끔 기숙사에서  밤에 술이 

취해서 이방 저 방 돌아다닐 때도 있어서 언제든지 잘릴 수도 있다는 말도 맥스는 덧붙였다.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의 약간 진상끼가 있는 친구가 학원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9시가 넘었는데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하나가 울상이 되어 내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3층 여학생 기숙사 복도에 누가 쓰러져 있으니 좀 가보라는 것이었다. 

가보니 탐이 팬티만 입고 머리는 샤워실 안에 몸은 복도에 두고 여학생 기숙사 복도 끝 샤워실 

앞에 쓰러져 있었다.


기숙사에서 술을 마시면 바로 퇴학이다. 밖에서 먹고 들어 왔어도 이 정도 문제를 일으키면 

일반 징계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원장은 좋은 사람이지만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일을 하면 가차 없이 조치를 취한다. 하는 짓은 미웠지만 잘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하나에게 엘리아 팀의 방 번호를 알려주고 남자 기숙사로 가서 찾아오라고 했다. 

잠시 후 하나가 돌아와서는 지금  학원에 맥스나 마틴이나 스캇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토요일 밤이라 하나의 다른 학우들도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일단 하나에게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팬티만 입고 토해서 쓰러져 있는 녀석을 더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하나는 걱정 어린 눈빛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혼자서 그 녀석을 샤워실에서 끌어냈다. 무척 무거웠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정신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이 남아서 입으로는 뭔가 구시렁대는 헛소리를 하는데 몸은 가누지 

못했다. “형님 죄송해요, 미안해요” 이러면서 실실 웃기도 했다. 나는 일단 어깨에 부축해서 

질질 끌다시피 계단 쪽으로 갔다.


그런데 남자 기숙사는 한 층 위이다. 혼자서는 이 거구를 도저히 위로 끌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정문의 경비를 불러서 탐을 업히고 내가 뒤에서 받치는 형태로 계단을 올라가서 녀석을 

방에 눕혔다. 나는 가드에게  50페소짜리 한 장을 주고 입을 로 채우는 시늉을 했다. 가드가 

“Ok, Don’t worry, No Problem Sir.”라고 하면서 싱긋 웃었다. 


그 장면을 본 사람은 나와 하나 그리고 경비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몰래 엿본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복도에서 나와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학원 사람들이 그 일을 다 알고 

있는 듯 숙덕거렸다. 아마 술집에서부터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맥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이 벌써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학원 앞에 쓰러져 있는 걸 경비가 부축해서 올라가거나 술집에서부터 업고 

온 일도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별 희한한 놈이 어학연수를 왔네.”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잊힐 때쯤 학원에서 파티가 있었다. 그 주에 학원에서 ‘마니토 게임’이라는 것을 했는데 선생과 

학생 사무실 직원 모두가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마니또 게임은 일주일 동안 자신의 마니또에게

몰래 편지나 선물을 보내고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편지나 선물을 받는 유대감을 강화하는 게임이다.


내가 선물을 할 마니또는 선생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이런저런 소품들을 선물로 보냈고 

나도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내 마니또는 내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솔직히 게임을 

하기는 했지만 학생들은 열심히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애들도 아니고 무슨 초등학생이나 하는 이런 게임을 하냐?”라고 대부분이 시큰둥했다. 

하지만 선생들이나 사무실의 현지인 직원들은 이 게임을 무척 재밌어했다.  


학원의 입장에서는 선생이나 사무실 직원들도 배려해야 하니 겸사겸사 매년 이런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마지막 날 간단한 음료와 식사를 준비하고 로비에서 마니또를 발표하는 파티가 열렸다. 그날은 

마니또 게임 마무리와 함께 졸업식과 입학식을 겸하고 있어서 학생이고 선생이고 사무실 직원이고 빠지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내가 본 중 학원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날이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졸업식과 마니또 행사 등 모든 일정이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려 하는데 갑자기 문제의 사나이 탐이 

나타나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 옆에는 마이클 선생이 기타를 치며 뭔가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갑자기 탐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노래 제목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감미로운 러브 송이었다. 


내가 옆에 있던 스캇에게 “저 놈 지금 뭐 하는 거야?”하고 묻자, 

스캇이 웃으며 “글쎄, 모르겠는데요.”하고 대답한다. 

노래가 끝나자 탐이 메모지를 보면서 더듬더듬 영어로 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분위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간다 싶었다. 나도 그 더듬더듬 읽는 탐의 영어 편지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편지 읽기가 끝나자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더니,  


"‘하나’에게 이 반지를 바칩니다." 이러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이 끝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와우~!!”하며 비명 섞인 탄성을 질렀다.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 같은 것도 들리는 듯  모두가 하나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로비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제히 하나 쪽을 쳐다본  것이었다. 

나도 물론 하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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