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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07. 2021

#34. Love line...(4부)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34. Love line...(4부)


하나 쪽을 돌아보니 하나는 평소와 다르게 얼굴에 웃음이 싹 가셔 있었다. 

당황한 듯했지만 무표정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바라보자 벌떡  일어나더니 당당한 걸음으로 

무대 쪽으로 나갔다. 그러자 탐이 기사가 왕에게 성배를 바치듯이 한쪽 무릎을 꿇고 하나에게  

반지를 올렸다. 일순간 로비에 정적이 흘렀고 하나는 잠깐 멈칫하더니 그 반지를 케이스 채 받았다.


그러자 로비의 모든 사람들이 또 환호성을 질렀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런 퍼포먼스를 좋아한다. 진짜든 아니든 관계없이 이런 종류의 퍼포먼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솔직히 누가 이런 류의 해프닝을 싫어하겠는가?


여선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로맨틱하다 어쩌다 하며 사진을 찍고 정신이 없었다. 

하나는 반지를 손에 쥐고는 마이크를 잡고 딱 한마디를 했다.  

“땡큐, 땡큐 탐”, 그리고는 무대를 내려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또다시 환성이 터졌고 탐은 손을 흔들면서 여유 있게 땡큐를 외치며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나는 계속 하나를 쳐다봤다. 시끄러웠지만 내 귀에는 안 들렸다. 

나는 하나가 반지를 끼는지가 궁금했다. 무대에서는 반지를 끼지 않았다. 

그냥 받아서 들고 온 것이다. 


하나 주위에는 하나의 1:1 선생에서부터 친한 친구들이 모여들어 법석을 떨고 있었다. 

하나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게 억지웃음으로 보였다. 

어쨌든 그날 하나는 파티의 여왕이 됐다. 


나는 우습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때 옆에서  “형, 어떻게 하냐?” 이런 소리가 들렸다.

 “내가 뭘?” 하면서 돌아보자. 스캇이 피식 웃는다.


“우리 술이나 먹으러 갑시다.” 하면서 내 손을 잡아끈다.

옆에 있던 맥스가 "형, 여기 먹을 거 많은데" 한다.

“여긴 술이 없잖아. 니들은 여기서 저거나 먹고 있어, 

나는 형하고 나가서 술이나 마시련다.” 하며 날 끌고 일어섰다.


마틴과 맥스가 “형, 어디 갈 건데?”하며 묻자,

“오늘은 비싼 데 가서 한 번 마셔보려고”하고 스캇이 대답했다.


그러자 맥스가 “에이, 그럼 형 따라가는 게 낫겠는데? 형이 사는 거지?” 하며 따라

나섰다. 마틴도 “형, 저거 조금만 먹고 가면 안 될까 아까운데.”하면서 로비를 돌아

보며 맥스의 뒤를 따랐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스캇의 손에 이끌려 학원을 나왔다.


그날 우리는 ‘재즈 블루(Jazz Blue)’라는 바를 갔다. 

감미로운 라틴댄스음악이 흐르는 재즈 바였는데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꼬마 아가씨들이 

드레스를 입고 아빠,  엄마로  보이는 사람들과  혹은 춤 선생님 같은 댄서들과 라틴댄스를 

추고 있었다. 귀엽고 예뻤다. 


그 바(Bar)에는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함께 섞여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댄스홀의 분위기가 무척 맘에 들었다. 그곳에는 본능을 거스르지 않는 자유로움 

같은 것이 있었다. 그들의 춤은 흥겹고 아름다웠다. 또한 야하기 까지 했다. 

거기서 술을 꽤 마셨다. 스캇이 자꾸 내게 술을 줬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하나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유는 나도 몰랐다.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왠지 얼굴을 부딪치고 싶지가 않았다. 

일단 하나는 탐과 같이 있을 때가 많았고, 나는 그날 이후 탐의 꼴이 더더욱 보기 싫어졌다.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들어가지 않고 식당 앞 휴게실에서 기다리다가 

그들이 식당을 나오면 들어가거나, 아예 방으로 갔다가 식사시간이 끝날 때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동행해서 어쩔 수 없이 밥을 먹게 되면 그들과 찍이 떨어진 

테이블에서 그쪽으로 일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렇게 행동하니 정말 일주일 내도록  하나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어차피 하나와 나는 수업의 레벨도  달랐고 생활하는  동선이 다르다.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식당이나 로비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충분히 안 보고 지낼 수 있었다. 하나가 일부러 나를 찾지 않는 한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우리는 부딪힐 일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꽤 흐른 어느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수영장을 가려고 서둘러 혼자 아침밥을 먹고 샌드위치를 챙겨 식당을 나서는데 식당 앞 

휴게실에 하나가 서 있었다. 식당 입구에서 정면으로 마주친 것이다. 


하나가 “안녕하세요. 한다. 

“Hi, Good morning?” 했더니, 

“Long time no see.” 이런다.


“I saw you everyday.”라고 했더니, 

“Really?” 한다.


그러더니,

“Why are you hard to see?”라고 웃으며 묻는다. 

“I don’t know.”라고 대답하고 어깨를 으쓱했더니, 


“Why are you talking English now?”하는 거다.

“No, reason, just kidding”이라고 대답했다.


“Can I talk to Korean language?”라고 물어서,

“It’s ok, no problem.”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저씨한테 할 말 있어요.”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나 지금 바빠서 가봐야 하는데 다음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잠깐 동안 날 빤히 쳐다보더니, 

“잠깐이면 되는데요” 한다.  


그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대체 이 아이에게 왜 이러나 싶었다.


( 5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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