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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09. 2021

#36. 첫 번째 여행 - 아일랜드 호핑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36. 첫 번째 여행 - 아일랜드 호핑


“형님 주말에 호핑 간다는데 같이 가시죠?”하고 마틴이 물어본다.  

“호핑?”하고 내가 물어보니, “선생들도 간다는데 같이 가시죠? 

이제 형님도 끝날 때 다 돼 가는데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다니셔야죠” 한다. 


“몇 명이나 가는데?”

" 못가도 20명은 갈 거 같은데요."


"스캇은?" 하고 물으니, 

“형 간다고 하면 스캇 형도 갈 거고요, 유키하고 제임스 선생님도 간데요. 

프랭크 선생하고 넬리아 선생도 갈 거 같아요. 같이 가시죠?”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지 뭐.”


관광 상품으로 세부에 오면 대부분 호핑이 기본 옵션으로 여행사에서 제공된다.

내가 매니저에게 ‘호핑(Hopping)’이 뭐냐고 물으니 매니저 말로는 섬에서 섬으로 ‘깡충깡충’  

뛴다는 것을 말로 표현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한다.  미국 동화책에 보면 개구리가 뛰는 모습을 

‘Hop!! Hop!!’이라고 표현한다나?


토요일 이른 아침에 학원 앞에 학생들을 막탄 섬까지 데려갈 차량이 도착했다.

오랜만에 세부 다리를 건너 막탄 섬의 다이빙 샵으로 갔다. 

다이빙 강사들이 반갑게인사를 한다.  

모두들 “왜, 다이빙 오지 않으세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물어본다. 

나는 바빠서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답을 했다. 학원 생활이야 뻔한데 바쁘다니...

그때까지도 나는 "오픈 워터" 다이빙 교육 때  먹은 바닷물을 생각하면 울컥거리곤 했다.

그러니 다이빙은 꿈도 꾸기 싫었다.


잠시 후 다이빙 샵에 정박해 있는 호핑 보트에 옮겨 타고 바다로 나갔다. 

배에서 앞을 바라보니  바다가  무척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에메랄드 빛 바다가 달력이나 엽서 사진처럼 아름답다. 

세부에 와서 처음으로 바다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보트가 출발하고 20분쯤 지나서 무인도 근처의 바닷가에 닻을 내렸다. 

배가 서자 매니저가 간단하게 스노클링 장비 사용법을  설명했다.  

수영이 익숙지 않은 학생들은 배에서 바다로 바로 들어가는 스노클링이 무서울 것이다. 

구명조끼를 입어도 발이 닿지 않은 곳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나는 평소 수영을 좀 하는 데다 스쿠버다이빙 교육까지 받아서 바다가 별로 낯설지 않았다. 

내가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자 스캇이 물어본다.


-스캇: 형, 수영 잘하죠?

-나   : 조금, 넌?

-스캇: 전 수영 못해요?

-나   : 야! 저 장비하면 수영 못해도 돼. 물에 둥둥 떠.

-스캇: 그래도 무서워요.

-나   : 그럴 거면 왜, 왔냐?

-스캇: 배에서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데요? 누구 비키니 입는 사람 없나? ㅎㅎㅎ

-나   : 으이그~


그러고 보니 여학생 중에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유일하게 유키만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나도 스캇을 배에 남겨두고 물로 들어갔다. 물속에 물고기가 많았다. 

오랜만에 바다에서 수영을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는 구명조끼를 벗고 물안경과 스노클만 물고 잠수를 했다. 

물속에는 다이버들이 물고기와 함께 다이빙을 즐기고 있었다. 

날 보고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들어줬다. 

마틴과 맥스는 수영을 잘했다. 유키는 선수 급으로 수영을 했다. 

'하나'가 같이 못 온 게 좀 아쉬웠다.


물고기가 많은 열대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 뭔가 모를 색다른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표현은 못하겠지만 하여튼 마음 깊은 곳을 자극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할까,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엇을 느낀다. 

그걸 아마도 사람들은 '자유(Free)'라 부르는 듯하다.


어쨌든 바닷 속에 들어가면 세상으로 부터 동떨어져있는 뭔가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것에 빠지면 사람들이 다이빙에 중독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 정도 까지는 아니어도 세부에 바다에서 처음으로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바다 가운데서 스노클링을 끝내고 무인도에 상륙해서 점심 식사 준비를 했다. 

일부는 배에서 먹을 것들을 내려서 식사 준비를 하고 일부는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섬에는 현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에게 와서 뭔가를 팔고 있었다.  

그러자 매니저가 나서서 거래를 하는 거 같았다. 

스캇은 배에서 끝내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섬에 도착하자 몇몇 어린 학생들이 달랑 들어서 물속에 처박아 버렸다. 

모두 아이들처럼 즐거워한다.


준비해 간 점심을 먹고 스캇과 함께 해변에서 맥주를 마셨다. 

해변 그늘에 퍼질러 있으니 학원으로 가기가 싫어졌다.  


“야, 정말 좋다.  좀 더 일찍 이런데 다녀 볼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스캇이, “형 좋죠?”하고 묻는다. 나는 “좋네.”하고 짧게 답했다. 


스캇이 “형도 여기 생활 얼마 안 남았고, 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리 여행 좀 다닙시다.”한다. 

“그래, 그래야겠다.”하고 답했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곳에서 노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한국 있을 때 여행 꽤나 다녔었다. 

오토바이로 전국일주도 해 봤고, 제주도 어도 해 봤다. 

학교 다닐 때는 전국에 있는 국립공원 산들의 정상을 다 찍는 걸 목표로 돌아다녔던 적도 있다. 

그런데 세부에 와서는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꼼짝 않고 거의 5개월을 방에만 처박혀 있었다. 

물론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즐길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기는 했다.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배 뒤로 가보니 보트맨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영어로 말을 붙여 보니 잘하지는 못하지만 대화는 통했다. 

일당이 얼마냐고 물으니 하루 호핑을 나오면 일당 150페소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3,500원이 안 되는 돈이다. 나는 마이마이에게 들어서 필리핀 사람들의 

인건비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고 있었지만 보트맨의 일당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할 즈음에 맥스와 마틴, 스캇 등 가까운 친구 몇 명에게 팁을 걷어서 

선장에게 돈을 전달 했다. 뒤에서 매니저가 날 보고 있다가, 슬쩍 웃는다.

괜히 겸연쩍은 마음에 "애들 고생한 거 같아서..." 했다. 


“보통 관광객에게는 호핑 끝날 때 팁을 조금씩 걷어요. 근데 학생들한테는 그렇게 못해요. 

그랬다가는 학원 가서 말이 나와요. 솔직히 보트맨들은 팁 보고 사는 건데. 

학생들 데리고 나오면 거의 수입이 없다고 할 수 있죠”한다.  


나는 “그럴 거 같았어.”하고 대답했다. 

매니저는 다이빙 가이드 출신이어서인지 이쪽 방면에 아는 것이 많았다. 


그날 저녁 식당에 사람이 없었다. 

호핑 후유증 때문인지 모두 밥도 안 먹고 뻗은 것 같았다. 

식당에는 하나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왜, 호핑 안 갔어?”하고 물었더니, 

“다른 약속이 있었어요. 재밌었다면서요?”한다. 

“응, 재밌었어, 너도 다음에 꼭 가라. 

나도 오늘 가보고 자주 못 간 거 후회되더라.”했더니, 

“네~~"하고 웃는다.


살다 보면 때로는 뭐가 더 필요하고 뭐가 더 중요한지를 잊게 될 때가 있다. 

이걸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걸 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라고 하면 

어떤 말도 답이 되지 않는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정해진 답 이외에는 어떤 대답도 "철딱서니 없는 소리"가 된다. 


“뭐? 바다색이 아름답다고?"

"그래서 그 따위 거 보러 다니면 누가 밥 먹여 준데?"

"정신 차려!! 영어 단어나 하나 더 외워, 그래야 먹고살 수 있어!”


"누가 어디 집을 사서 집 값이 얼마가 올랐네, 누가 어떤 주식으로 대박이 났네."

이런 대화가 주류를 이루는 세상에서 머릿속에 있는 말을 함부러 하는 것은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행동이 된다. 


뭔가 인문학적 고민을 이유로 말이 길어지면 궁색한 변명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모든 질문의 가장 좋은 대답은 "이거" 아니면 "저거"인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니 난해한(?) 아니 관념적 주제가 대화의 소재가 되면 아예 말을 참아야 할 때가 많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조직에 섞이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것이 사회 생활이다.   


언제부턴가 너무나 쉽게 현실이라는 괴물에게 자신을 잡아 먹히며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더 이상 ‘행복한’, ‘아름다운’, ‘멋있는’, ‘감동적인’, '정의로운' 등의 형용사를 일상의 대화에서 

사용하지 않게 됐고, 이런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바라 본다.

그런데 정말 물질적 가치는 모든 것에 최우선 할까? 


아니겠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래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과 그 결과로 생기는 나의 삶에 의미가 생긴다. 

그러니 이렇게 우기기라도 해야겠다. 

"지금 나의 시간은 가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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