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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24. 2021

#41. 통 증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같은 착각은 하지 말 것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41. 통증(症)


이틀 째 꼼짝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다. 화장실도 못 가서 소변은 페트병에 받아낸다. 

업도 못 가고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있자니 죽을 맛이다.


지난 토요일 오전에 알렉스와 레이가 학원에 왔다. 

원장과 약속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사업 이야기가 오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원장과 미팅을 끝내고는 나서는 내게 찾아와 점심을 먹자고 한다. 

학원 근처의 한국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준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 들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학원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허리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알렉스와 레이에게 통증이 있다고 하고 원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학원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거리였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 생각해서 천천히 걸었는데 

학원을  100m쯤 앞두고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쓰러지고 말았다.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몰려와서 길바닥에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알렉스와 레이는 무척 놀랐고 나도 놀랐다. 나는 그 길바닥에 엎어진 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레이가 앰뷸런스를 부르자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잠시 쉬면 된다고 하고 일단 학원까지만 가자고 했다. 

알렉스가 나를 업고 레이가 뒤에서 거들듯이 받치고 겨우 학원에 도착해서 내 방에 날 눕혔다. 

알렉스와 레이는 약속이 있다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남기고 꼭 병원에 가보라고 하며 방을 나갔다. 

그 후 이틀 째 꼼짝도 못 하고 누워만 있는 것이다.

누워 있으면 아프지 않았고 사실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런데 일어서려고 머리를 들면 허리에 끊는 듯 통증이 몰려왔다. 도대체가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맥스와 마틴, 스캇이 각자 가지고 있던 의약품을 가지고 왔는데 쓸 만한 건 없었다. 

일단 소리담을 허리에 바르고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마틴이 병원을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스캇이 오늘은 토요일이라 병원이 열지도 않으니 가려면  

응급실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겠냐고 물어본다. 나는 일단 누워있으면 통증이 없으니 일요일까지 

경과를 보자고 했다. 일요일이 지나서도 못 움직이면 그때 병원을 가자고 했다. 식사는 맥스와 마틴이 

때마다 방으로 배달을 해 줬다.


나는 틈 날 때마다 맨소리담으로 계속 찜질을 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룻밤이 지나 일요일이 되자 통증이 조금 완화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혼자서 침대를 일어날 수는 없었다. 

신기한 것이 움직이지 않으면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고 돌아 누울 

수도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월요일이 되니 매니저가 방으로 찾아왔다. 같이 병원을 가보겠냐고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이틀 정도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매니저도 현지에서 병원을 가는 거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다고 했다. 

병원비도 비싸고 치료를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 병원비로 한국을 가는 게 낫다고 했다. 

며칠 더 쉬어 보고 계속 아프면 한국으로 후송을 생각해 보자고 한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매니저에게 수업을 빠지기는 싫으니 1:1 선생을 방으로 보내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매니저는, 그건 자기가 결정할 수 없으니 원장에게 물어보고 답해 주겠다고 한다. 오후가 되어 1:1 제니스 

선생이 매니저와 함께 내 방으로 와서는 방문을 열어놓고 수업을 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제니스 선생은 의자에 앉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수업을 했다. 

그날은 자연스럽게 필리핀 의료 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리핀 사람들이 받는 의료 혜택에 대해서 제니스 선생이 많은 이야기를 해 줬다.


제니스 선생의 말에 따르면 좋은 병원은 병원비가 엄청 비싸다고 했다.

공립 병원은 좀 싸기는 하는데 시설이 열악하고 의사들의 수준이  낮아서 자기들도 가길 꺼린다고 했다. 

그래서 아프면 대부분 약국에서 약으로 치료를 한다고 한다.


약은 완제품을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입을 하는데 수입 의약품이 약효가 좋다고 믿고 있었다. 

필리핀 병원에 대한 불신을 듣고 나니 매니저가 왜, 병원비로 한국으로 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제니스 선생은 시골 출신이다. 그녀의 말로는 아직도 필리핀에는 동네마다 트레디셔널 닥터

(Traditional Doctor)라는 무허가 동네 의사가 있다고 했다. 우리로 치면 ‘침구사’나 ‘산파’ 같은 

사람인데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은 이들로부터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출산의 경우는  시(市, City)나  동(洞, Barangay)에서 운영하는 보건소 같은 여성의료센터에서 

싸게 서비스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지불할 수 없는 사람은 집에서 아이를 낳는데, 이럴 때 트레디셔널 

닥터나 산파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처럼 갑자기 통증이 오면 트레디셔널 닥터(Traditional Doctor)들이 마사지요법으로 치료를 하는데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라고 했다. 오일과 핫팩 등을 이용하는 이런 전통 마사지 요법을  

‘힐롯(Hilot)’이라 부른다. 필리핀 사람들은 감기가 걸려도 마사지,  소화가 안 돼도 마사지,  열이 나도 

마사지 모든 병을 마사지로 치료를 한다. 내가 듣기에는 손으로 하는 일종의  ‘기(氣) 치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전통이 때문인지 필리핀 사람들은 지금도 마사지를 좋아한다. 마사지 샵이 동네마다 많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타이 마사지’를  기본으로 하는 체인점들이지만 그 저변에는 이런 힐롯 마사지(Hilot Massage)의 전통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한 번 치료를 받아보고 싶었지만  학원으로 그런 사람을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서 생각만 하고 말았다. 

나는 한국에서 직업적으로 운동을 했었다. 프로 선수는 아니어도 운동으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세미 프로라고 말할 수 있다. 나름 운동을 많이 하던 어릴 때는 꽤나 심하게 했기에 

몸의 여기저기가 조금씩 망가져 있다. 그렇다 보니 통증에는 조금은 익숙한 편이다.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병원에 갈 통증과 병원에 안 가도 되는 통증을 스스로 판단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사람은 "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라고 생각 하겠지만 체육을 업으로 했던 사람들은 조금쯤은 공감을 할 것이다. 의사가 의료 행위로 병을 

한다면 운동선수들은 단련의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기 때문이다.  


이 행위를 과신해서 병을 키우기도 하지만 젊은 선수들은 단련을 통해서 병이 치료되는 과정을 많이 

경험하기 때문에  쉽게 병원을 가지 않게 된다. 물론 부러지거나 찢어지는 것 같은 외상은 예외다. 


내게도 아직 그런 무모함이 남아 있었던지 나는 그 통증을 그대로 몸으로 견뎠다. 

쓰러진 지 5일째인 수요일 오전이 되었을 때는 혼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갈 정도까지 몸이 회복됐다. 

힘들었지만 수요일부터 1:8 수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에 참가했다. 


나는 학원 첫 수업을 받을 때 했던 결심이 있다. 

학원을 졸업하는 날까지 모든 수업을 한 번도 결석하지 않겠다는 개근의 다짐이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틀 동안 1:1 수업을 제외하고 

모든 수업에 결석을 했다. 이것이 참 아쉬웠다. 


나는 프랭크가 진행하는 1:8 수업을 6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라는 기록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이 기록은 이제 다 물 건너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기록에 집착하는 게 우습지만 

나만 알고 실천하는 이런 거 하나쯤 완성하면 꽤나 뿌듯할 것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했던 일이다.

이런 식의 나와의 약속도 운동을 할 때 생긴 버릇인데 이게 자존감을 상승시키는데 꽤 효과가 있다. 

대부분 성공했었는데 이번에는 예기치 못한 통증으로 실패하게 됐다. 참 아쉽다.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하나가 두 번이나 과자와 과일을 사다 주고 갔고, 마이클 선생이 저녁마다 

커피머신을 가져와 커피를 내리고 기타를 치며 놀아줬다. 프랭크 선생은 방으로 찾아와 놀란 얼굴로 

날 위로해 줬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삶은 이렇게 또 이어져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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