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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27. 2021

#44. 두 번째 여행...(3부)

여행이 끝나면....

#44. 두 번째 여행   - (3부)

여행이 끝나면....


창밖으로 옆 리조트가 보인다. 

아침에 바다 구경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옆 리조트의 테라스를 훔쳐보게 됐다. 

다이빙 슈트를 걸쳐 놓은 걸 보니 다이버들인 것 같았다.  일정을 의논하는지 사람들이 이쪽저쪽 방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해변에는 이미 배를 출발시키는 다이버들도 있었다. 햇빛이 반사되는 바다 위로 분주히 

보트들이 드나들고 보트맨들이 다이빙 장비를 배에 싣는다. 아침 해변이 활기차다.

우리 숙소 옆 계단에는 이미 동네 꼬마들이 모여서 물놀이를 시작했다. 

구경하고 있다가 나도 베란다에서 점프해서 바다로 들어갔다. 

물은 깨끗하고 물고기도 많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바닷물이 차지가 않았다. 

내가 동네 꼬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수영해서가니 동네 강아지도 물속으로 들어와 함께 물놀이를 한다. 

수심이 꽤 깊었음에도 아이들은 물로 뛰어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아이들과 물속에서 한참을 놀았다. 

꼬마들이 물속에서 물고기 잡는 걸 보여주겠다며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한다. 

물 위에서 하는 수영은 내가 빨랐지만 물속에서는 도저히 아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오리발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속 산호초와 바위틈 사이로 각종 물고기와 예쁜 니모(크라운 피시)들이 왔다 갔다 했다. 

신기하게도 여기 아이들은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모알보알은 물 밖도 예쁘지만 물속은 더 예쁘다. 

아침 수영을 바다에서 해보기는 처음이다. 몸을 스치는 열대의 바닷물이 여인의 손길처럼 부드럽다. 

아침 수영이 기분 좋은 자극으로 온몸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물에서 나오자 베란다에서 보고 있던 스캇이 과자봉지를 던져줬다. 

바다수영을 한 후 달콤한 초콜릿이나 과자를 먹으면 입에서 짠 기운이 가시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함께 놀던 동네 꼬마들과 앉아서 과자를 나눠 먹었다. 아이들이 무척 재밌어했다.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마 덩치 큰 외국인이 자기들과 노는 게 신기했을 것이다.  


방으로 돌아오니 맥스가 라면을 끓이고 있고 마틴이 해장을 하자며 맥주를 딴다. 

나는 술을 잘 못 한다. 그래서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래도 이럴 때 안 마시면 언제 마시겠나? 

빈 속에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니 식도와 위장이 확인되는 것처럼 뱃속이 짜릿했다. 

알코올 기운이  몸의 구석까지 전달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살아 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술을 이런 맛에 마시는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스캇이 옆에서 “저도 수영 배워야겠어요.”한다. 내가 동네 꼬마들과 물속에서 노는 게 부러웠던 것 같다.


우리는 오늘 아무런 일정이 없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방에서 뒹굴다가 세부로 출발할 예정이다. 

맥스와 마틴은 아침을 먹고 수영을 하러 나갔다. 스캇과 내가 산책을 하러 로비로 나가자 다이빙이나 

호핑 안 가냐고 리조트 사장이 물어본다. 자기가 좋은 포인트를 알고 있다고 자랑이다. 상어도 볼 수 있고 

거북이도 볼 수 있단다. 리조트 사장은 자기 보트에 손님들을 모아서 다이빙이나 호핑을 나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현금이 부족해서 할 수가 없었다. 

필리핀에서는 현금이 없으면 뭘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대도시인 세부에서도 카드 사용이 제한적인데 

하물며 이런 시골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정말 해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모알보알 꼬맹이들)


체크아웃을 하고 리조트를 나오니 아침에 같이 놀았던 동네 꼬마들이 몰려와서 아는 척을 한다. 

나는 남아 있던 먹을거리를 다 꺼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읍내로 나와서 마틴이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버스보다 조금 편한 교통편인 ‘엑스프레스 밴’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올 때 완행버스로 너무 고생을 해서 모두 좀 편하게 갈 방법을 찾자고 했던 것이다. 

'엑스프레스 밴'은 가격 차이는 좀 나지만 버스보다는 훨씬 편했다. 당연히 에어컨도 잘 나왔다. 

차에 몸을 싣자 오전에 마신 맥주 덕분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기분 좋게 졸다 깨어보니 세부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여행은 끝이 났다.


학원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잠시 잡담을 하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자 맥스는 또 외출을 했다. 체력이 남아도는 것 같았다. 

마틴은 강의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스캇은 방에서 남은 맥주를 몰래 마시고 있을 것이다. 

이틀간의 일탈을 마치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여행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반복되는 학원 생활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이번 여행으로 많이 사라졌다. 

여행은 딱딱한 일상을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제 세부 생활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내 인생의 긴 여행 중 하나가 끝나간다.

이 여행이 끝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미래가 두렵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서 미래가 결정되길 바란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결정했으니 후회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 인생의 다음 여정은 무엇이 될까? 

기다려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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