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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28. 2021

#45. 파티...

선택할 것이 없는 사회에 사는 인간은 새장 속의 새와 다를 바가 없다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45. 파티...


학원 옆에 아주 큰 개인 주택이 있다.  

학원 옥상에서 보면 집 안의 일부가 보이는데 건물 세 채 정도로 이루어진 꽤 큰 저택이다. 

본관이 있고 별채가 있고 집안일하는 람들이 쓰는 것으로 보이는 별채 건물이 따로 있다. 

마당의 절반은 잔디가 깔려 있고 별채 쪽 마당에는 농구장과 주차장이 있다. 

토요일 오후에 그 집에서 무척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다. 


식당 창문으로 내다보니 마당 전체에 천막이 쳐져있고 한쪽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집 담벼락에 동네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안을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큰 티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집에서 꽤 큰 음악이 나오고 있었는데 주말이라 수업은 없었지만 시끄러워 짜증이 났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그 집으로 찾아가서 정문 가드(Guard)를 불러 물었다. 

가드 말로는 집주인이 자녀들을 위해서 파티를 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서 잠깐 들어가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가드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가드에게 다시 오겠다 하고 학원으로 돌아와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그 집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는데 계단에서 하나와 마주쳤다. 

하나를 보자 순간적으로 혼자 가는 것보다 파트너가 있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에게 같이 가겠냐고 물어보니 눈이 동그래지면서  “어디 가시는데요??”한다. 

옆집 파티에 간다고 했더니 나보고 초대받았냐고 물어본다. 


“나 혼자 가는 거보다는 너하고 같이 가면 좋지 않겠냐?” 

“못 들어가면 어떡해요?” 

“못 들어가면 그만이지 뭐” 

“그래요? 재밌겠는데요?” 


하나는 반바지와 면 티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가서 신발만 갈아 신고 와” 했더니, 

“잠시 만요.”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몇 분 후 하나가 폴로셔츠에 긴 바지, 운동화를 신고 내려왔다. 


나는 하나와 함께 옆집으로 갔다. 가드는 나와 하나를 보더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드레스를 입은 중년 부인을 데리고 나왔다. 나는 짧은 영어로 인사를 하고 옆의 학원에서 음악 소리를 

듣고 왔다고 했다. 부인이 웃으며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무슨 파티냐고 물으니 올해 아들과 딸이 동시에 대학과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축하 티를 

한다고 했다. 나도 함께 축하해 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나와 하나를 번갈아 보더니 미소 지으며 

들어오라고 했다.



부인은 직접 우리를 무대 앞쪽 테이블로 안내해 줬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서 나와 하나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을 물으며 

대화를 잠시 나눴다. 여주인은 친절하게 음료와 음식이 어디 있으며 어떻게 먹는지 알려주고는 

재밌게 즐기다 가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부인은 매우 품위 있게 행동하고 있었다. 


하나와 내가 앉은 테이블은 고등학생들이 앉은 테이블이었다. 원탁에 8명 정도가 앉을 수 있었는데 

나이가 어려 보였다. 옆에 여고생처럼 보이는 학생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가 여기 집주인과 어떤 사이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딸이라고 했다. 자기가 오늘 파티의 주인공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인이 나와 하나를 자기 딸이 앉은 테이블에 안내해 주고 간 것이었다. 

인사를 하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거기 앉으라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그날 파티의 주인공 

중 한 명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옆에서 하나가 큭큭 거리면서, 

“야~ 아저씨 따라다니니까 별일이 다 생기네요. 덕분에 오늘 좋은 구경하게 생겼어요.” 

“그렇지? 나 따라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 

"ㅎㅎㅎ" 

하나가 날 보면서 명랑하게 웃었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산 카롤로스 대학”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대학생도 교복을 입는다. 

산카를로스 대학은 세부에 있는 사립 명문대학교이다. 프랭크 선생이 졸업한 학교이고 학원 선생들 

중 몇 명이 그 학교 출신이다. 아마 이 집 아들이 올해 "산 카를로스 대학"을 졸업하는 모양이었다.


얼마간 지나자 파티의 주인공인 아들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쥐고 친구들을 소개했다. 

아마도 졸업 동창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유창한 영어로 한참을 떠들었다.   

오늘 파티에 참여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파티를 열어준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무대 구석 쪽에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여주인이 앉아 뿌듯한 얼굴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들이 연설을 끝내고 어머니를 무대로 불러 포옹을 했다. 관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자 어머니인 여주인이 마이크를 받아서 또 뭔가 인사말을 했다.  

아마도 아들이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해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무대에서 내려가자 아들이 친구의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잘 부르지는 못했지만 열창이었다. 옆 테이블의 대학생들이 환호하면서 난리가 났다.

이어서 전문 밴드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서 연주를 했고 무대 밑에서는 먹고 마시는 

즐거운 파티가 이어졌다. 가끔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하나와 한동안 앉아서 구경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여주인은 모든 말을 영어로 하고 있었다. 

웨이터나 가드들에게는 세부 말로 했지만 딸이나 아들 혹은 손님들에게는 항상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 말을 하나에게 했더니 하나는 “ 그러고 보니 그랬네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거 아닐까요?”라고 한다.


나는 "필리핀의 상류사회 사람들은 집에서도 영어를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만난 현지인과 선생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필리핀에는 아직도 귀족계급이 존재한다. 

유럽처럼 작위를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도 경제적 귀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반인들과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고 언어도 일부러 다르게 쓴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자국어를 많이 쓰게 되어 영어를 서서히 잊지만 귀족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영어를 일상화해서 일반인들과는 다른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현지인은 대부분 그렇게 말했다. 


어떤 선생은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로 계속 남는 게 나았다는 말도 했다. 

부자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독립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일본으로부터 독립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꽤 잘 사는 축에 드는 나라였는데 

정부의 부패와 무능으로 점점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차라리 자치권이 있는 연방으로 남았으면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정부는 귀족계급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정책만 내세울 뿐이었고 그런 귀족계급들은 돈과 힘을 

이용해 정권을 돌려먹으며 나라를 쥐고 흔드니 나라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한국도 비슷한 것이 아닌가?"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현명하나 것일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할까?"


선택할 것이 없는 사회에 사는 인간은 새장 속의 새와 다를 바가 없다.

주는 모이나 먹고살아야 한다. 이런 생각에 빠지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나의 선택이 미래를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하며 살고 있다.

내가 하는 행위가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언가 또 선택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조금은 당당한 척해 보려 한다.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감을 높여 놓으면 적어도 피해서 도망치진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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