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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26. 2021

#43. 두 번째 여행...(2부)

모알보알(Moalboal)에서 보내는 밤...

#43. 두 번째 여행  - (2부)

 모알보알(Moalboal)에서 보내는 밤...


폭포를 뒤로하고 모알보알로 돌아오니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읍내에서 '트라이'라 불리는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해변의 리조트 지역으로 향했다. 

중간중간에 다이빙 숍들이 보이고 동네 사람들이 보인다.  

모알보알 버스 정류장에서 10분쯤 달리자 '파낙사마 비치'라는 간판이 나타났다. 


모알보알’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작은 동네 전체가 해변을 중심으로 줄지어 붙어 있는 리조트 단지이다.  

마틴과 맥스가 리조트들을 돌아다니며 흥정을 했다. 수영장이 딸려 있는 고급스러운 곳도 있고, 

게스트하우스를 겨우 면한 수준의 숙소들도 많이 있었다. 


바닷가 리조트들은 베란다에서 바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묘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즉, 투숙객이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수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같으면 아마 안전사고 

위험으로 이런 식으로 리조트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밤 수영을 금지하고 있다. 특별한 수영장을 제외하면 24시간 수영은 불가능하다. 

야외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여름이라 해도 한국은 해가 지면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 어렵다. 

일단 추워서 체온이 빨리 떨어져 위험하기도 하고 물살도 밤에 더 세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부는 다르다. 보름달이 비치는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러다  떠내려가는 건 본인 책임이지만 세부 바다는 한국처럼 파도가 높거나 물살이 세지 않다. 


수영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에게 잔잔한 바다에서의 밤 수영은 무척 유혹적이다.  

보름달을 보면서 바다에 누워 있을 수 있다니..... 헐~~


숙소를 잡자 마틴과 맥스가 바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베란다에서 낮에 먹다 남은 삼겹살을 굽고 맥주를 마셨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 피곤했지만 베란다 밖으로 노을에 젖은 붉은 바다를 보고 있으니 푸근한 

여유로움이 온몸을 감싼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해가 떨어지니 동네 전체가 바(Bar)처럼 변한 것 같다. 

낮에는 식당이던 거리의 건물들이  모두 노천 바(Bar)로 변했고, 낯선 외국인들이 왁자하게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다. 우리는 해변이 잘 보이는 바(Bar)에 자리를 잡았다.


스캇이 “하나 하고는 잘 돼가요?”하고 묻는다. 

듣고 있던 마틴이 “형, 하나 하고 사귀어요?”하고 놀라며 되물었다. 

내가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그러네!”하고 대꾸하자,

“형, 참 웃겨요”하고 스캇이 말한다.

옆에서 맥스가 “뭔데? 뭔데?”하고 끼어든다.


꽤 오랫동안 나의 형이상학적인 애정관에 대한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그러니까 형 진짜 웃긴다니까...ㅋㅋㅋㅋ”이랬다. 말이 안 통한다.


해풍이 부는 해변의 바에서 다섯 남자들이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평범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가슴속에 무거운 짐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었다.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와 있는 사람 중 마음 편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한국에서의 각박함에 떠밀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바에는 당구대가 있고, 말 상대를 해주는 섹시한 바텐더가 있고, 감미롭게 흐르는 음악이 있었다. 

간혹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를 다이버들이 떠들다 가곤 했지만 바(Bar)는 대체로 조용했다. 

우리는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고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에 소나기가 내렸다. 스콜이 폭포수처럼 하늘 가운데 구멍을 뚫고 바다로 쏟아진다. 

신기한 장면을 보면서 마지막 잔을 비우고 우리는 바(Bar)를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가씨들이 옆에 붙어서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인다. 

그리고 살며시 귀에 “온리 원 싸우전 Ok?”하고 속삭인다.


그 말을 듣고 “방 몰아주기 할까요?”하고 맥스가 한 마디 한다. 우리는 방을 두 개 잡고 있었다. 

내가 “내 방은 못내 준다”하자 모두 큭큭거렸다. 

남자들끼리 여행을 왔으니 이런 이야기가 빠질 수가 있나. 

우리가 그냥 지나치자 "Sweet Dream~~ Sir." 하며 손을 흔든다.


방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뉘었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만약 여기를 오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지난 5개월 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기서 겪었던 것보다 더 값진 무언가를 얻었을까? 


한국에서의 마지막 1년을 돌이켜 본다.  

작년 이맘때 무엇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일이 없다는 건 반복되는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다.


지금 난 반복되지 않는 시간을 꿈꾼다.

나는 내년에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후년에도 내년에 내가 했을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사회 규범에 어긋나지 않게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 보니 별 거 없었다. 늘 반복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반복됨이 없는 쪽으로 선택의 방향을 바꾸어 본 것이다. 


‘살아가나’, ‘살아지나’. 

‘그렇게 사나’, ‘그렇게 살지 않으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반복되는 시간을 살던, 반복되지 않는 시간을 살던 그건 본인의 선택이다.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선택은 자신의 몫이고 결과는 운명이다.

이렇게 합리화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밖에서 해풍이 풀어온다.

바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바람의 향기가 너무 깨끗하다.

아침에 일출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잠결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기 오길 참 잘했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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