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03, What is your name?
<<수업 시간표>>
* 1교시 : 8am ~ 9:40 am
* 2교시 : 10am ~ 11:40 am
* 점심시간 : 12pm ~ 1pm
* 3교시 : 1pm ~ 3:40 pm
* 4교시 : 4pm ~ 5:40 pm
* 저녁시간 : 6pm ~ 8pm
* 추가 수업 (extra class) : 6pm ~ 7:40 pm
<<수업 구성>>
*기본(1일) :
한 번의 1:1 수업, 두 번 1:4 수업, 한 번 1:8 수업
1) 1:4 또는 1:8 수업은 1:1 수업으로 변경 가능 (추가 요금 발생)
2) 추가 수업 (5교시, extra class) 신청 시 추가 요금 발생함.
3) 1:8 그룹 수업은 출석에 반영되지 않음. (자율 참석)
<<주의 사항>>
* 4교시(오후 6시) 이후 및 주말(토, 일)은 자유시간.
* 외출 시 밤 12시 이전에 기숙사 복귀.
* 금, 토요일은 새벽 2시 까지 복귀시간 연장.
* 외출 시에는 정문 경비(Guard)에게 이름과 시간 기록할 것.
* 통금 위반: 1차 경고, 2차 퇴학.
* 무단결석: 1차 경고, 2차 퇴학. (1:8 수업 예외)
* 기타 불법적인 행위에 관한 여러 가지 세칙이 있음. (기숙사 내 음주 및 도방, 카지노 출입 등)
* 퇴학 자에게 수업료 환불하지 않음.
"What is your English name?"
레벨 테스트가 끝나고 사무실로 불려 가니 현지인 직원이 물어본다.
이 정도는 이제 알아듣는다. 나도 학원 물 이틀이나 먹었다.
한국인이든 현지인이든 보는 사람마다 내게 이걸 물어본다.
사무실에서 한국 이름 부르기 힘드니 영어 이름을 하나 만들라고 한다.
한국 이름이 영어 발음과 비슷하면 그냥 써도 되지만, 발음이 힘든 한국
이름은 학원 생활에 불편하니 영어 닉네임 하나쯤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사무실에 가니 현재 학원에 없는 이름이라며 리스트를 보여준다.
“리처드, 테드, 미겔, 라파엘, 에디, 마크 등등...”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중 하나를 골랐다. 좀 더 멋진 이름을 한국에서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내가 이름을 고르자 순식간에 서류 작업이
진행됐고 필리핀에서 첫 번째인 나의 신분증(학원증)이 만들어졌다.
첫날은 참관 수업이 가능했다.
1:1 수업은 다음 날부터 사무실에서 선생을 배정하겠지만 그룹 수업은
2~3일 여러 교실을 참관해 보고 결정해도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수업 배정이 가능한 방들을 알려줬다.
오후에 두 번의 1:4 수업이 남았으니 아무 교실에나 가서 참관하라고 했다.
오전에는 1:8 수업 참관을 해 보라고 했다. 나는 1:8 수업 교실로 향했다.
이 학원에는 2명의 남자 선생님과 20여 명의 여자 선생님이 있다.
1:8 수업은 학원에 2명뿐인 남자 선생님 중 한 명인 프랭크(Frank)선생이 담당하고 있다.
나는 수업 시작 전에 1:8교실로 들어가 프랭크 선생과 인사를 나눴다.
프랭크 선생은 중년에 키가 크고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 : 하이~~
프랭크: 굿 애프터 눈 미스터~~.....
나 : 음~~, Kim
프랭크: 솰라 솰라.... 잉글리시 네임... 솰라솰라...
나 : 음~~, Sorry..
프랭크: Ah, Ok no problem.. 솰라솰라....
나 :........
수업이 시작되려면 1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기다리면서 프랭크는 굉장히 쉬운 영어로 내게 뭔가를 물어봤고,
나는 무척 쉬운 한국말로 답을 했다. 프랭크는 한국말을 잘 알아 들었다.
내 영어보다 프랭크의 한국어가 더 나아 보였다.
수업이 시작되는 벨이 울리자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두 명이 들어왔다.
수업 인원은 나를 포함 총 4명이었다. 프랭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수업을 시작했다.
그날은 초반에는 처음 들어온 날 중심으로 수업은 흘러갔다.
학생들은 내게 질문을 했고 나는 당연히 답을 못했다.
내게도 질문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도저히 영어로 뭘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멋쩍은 미소로 그 자리를 때웠다.
내가 아주 쉬운 질문에도 답을 못하자 학생들이 통역을 해줬다.
내가 한국말로 답하면 학생들은 영어로 프랭크에게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도 내가 수업에 끼어들지 못하자 모두 내게서 조금씩 관심을 끊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해 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그건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첫 수업은 그렇게 뭘 할지 모르는 채 꿀 먹은 벙어리로 2시간을 앉아 있다가 끝났다.
교실을 나서는데 프랭크가 등 뒤에 이런 말을 던진다.
“Hey, Mr Kim. Don't worry!!"
세부(Cebu)섬 지도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엎어졌다. 피로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느낌이었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는 건가?”,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한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두통이 왔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1:4 수업에 들어갔다. 오전과 별로 다를 건 없었다.
첫인사, 소개, 학생들 소개, 선생 소개 등등. 1:4 수업은 비슷한 레벨의 학생들을 배정하기
때문에 좀 나을까 생각했지만 나와 비슷한 수준의 학생은 없었다.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혹은 군대에서 이제 막 돌아온 20대들이었고, 적어도 학교에서 영어
듣기 수업과 듣기 평가를 얼마 전까지 공부하던 친구들이었다. 나와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학원물 꽤나 먹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이 말하는 '영어를 못한다'는
수준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기준점 자체가 달랐다.
저녁을 먹으면서 매니저에게 궁금한 걸 몇 가지 물어봤다.
-나 : 1:8 수업은 왜 그렇게 수업을 빠지는 사람이 많지?
출석부에는 7명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학생들이 많지 않던데?
-매니저 : 원래 1:8 수업은 사람들이 잘 안 들어가요.
출석체크를 안 하니까 애들이 그 시간에는 자기 공부한데요.
1:8 수업은 교재 없이 프리토킹만 하니까 별로 재미없어하더라고요.
매일 같은 사람과 프리토킹 2시간 그거 생각보다 지겨워요.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어봐도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1:8 수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쓸데없이 잡담만 하고, 시간 아까워요.”
“프랭크 선생 수업은 이상한 대화로 흐를 때도 많고
쓸데없는 슬랭 관련한 수업도 자주 해요."
"수업 끝나면 남는 게 없어요. 그 시간에 방에서 단어나 외우는 게 더 나아요.
해 보시면 알 거예요.”
“미국 살다 왔다는데 발음은 그냥 필리핀 발음 그대로잖아요. 정말 돈 아까워.”
학원에서 1:8 수업의 평가는 대충 이랬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프랭크 선생이 마음에 들었다.
학생들 사이에 프랭크는 외딴 섬 같은 존재 같아 보였다.
그는 학원 원장과 더불어 유일하게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다.
그날 이후 나는 프랭크와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랭크 선생은 뉴욕에서 20년 정도 살다온 뉴요커였다.
아직도 미국 영주권이 있지만 다시 미국에 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여러모로 관심이 많이 가는 인물이다.
말이 조금만 트이면 할 말이 많을 거 같다.
"그런데 말이 트이기는 할까?"
낯선 사람과 낯선 곳에서 낯선 것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그들과 대화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첫날 첫 수업과 일과를 끝내고 노트에 몇 자 적었다.
“말을 배운다는 게 뭐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