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올해 초, "살면서 겪은 죽음의 문턱...."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물론, 끝내지는 못 했다. 알다시피 글을 완성하는 건 아이템이나 시간으로만 되지 않는다.
글 쓸 여건이 갖추어져야 하고 소위 말하는 필~이라는 것도 와야 한다.
글쓰기 전문가들은 필~~에 관계없이 매일 글을 쓰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글이라고는 할 수 없는 메모만 양산하다가 시들해지는 게 나의 행태였다.
그러던 내가 오늘 갑자기 "살면서 겪은..."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내가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죽을 고비라는 건 죽을 만큼 힘들다는 형용사적 의미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진짜 죽을 뻔했다는 소리다.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의 죽을 고비는 다섯 번 정도 된다.
모두 물리적으로 죽을 뻔한 일을 말한다.
첫 번째 죽을 뻔한 고비는 사회 초년 시절 강원도 평창에서 터널 보수 공사를 할 때였다.
공사장으로 물을 옮길 탱크로리를 구할 방법이 없자 회사는 5톤 차량을 물차로 급조해 내게 운전을 시켰다.
산 꼭대기 양식장에서 물을 받아 중턱 공사현장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아침이면 혼자 산 정상으로 차를 끌고 올라가 물통을 채워서 한참 아래 있는 현장으로 옮겼다.
이게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한 두 번 하면 점심때가 됐고 점심 먹고 또 몇 번 그러면 퇴근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패턴이 바뀌어 물을 가득 실은 상태로 마을로 내려올 일이 생겼다.
평소 마을로 내려올 때는 늘 빈 차였기에 내리막길 운전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물이 가득 실려 있다는 것을 깜박하고 빈차 때와 똑같이 운전을 한 것이었다.
그랬더니 어라? 커브 길에서 한쪽 바퀴가 슬며시 들리는 게 아닌가?
"어~~! 어~~!" 하는 순간,
앞 유리창이 깨지며 얼굴로 날아들었다.
큰 차가 옆으로 쓰러져 물을 쏟았으니 시골 국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아마도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차가 박살이 났음에도 난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이었다.
지나가는 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그리 큰 부상은 아니었다.
당시 읍내에는 병원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곳 의사 선생님이 날 이리저리 보더니,
"큰 병원 갈 필요는 없겠어."라고 했다.
그러고는 40여 바늘 정도 꿰매는 간단한(?) 수술을 했다.
의사는 찢어진 얼굴을 보면서 눈 안 다친 게 천운이라며 예쁘게 꿰매 주겠다고 했다.
그 뒤로도 오토바이 사고로 네 번 정도 병원에 입원했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의 큰 사고는 없었다.
실제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것은 이런 사고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모기(뎅기열)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휴가온 사흘째 되는 날 고열로 쓰러져 119 엠블란스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간 적이 있다.
한국 병원 의사들은 원인을 모른다며 뭔지 모를 주사만 계속 놨고, 퇴원하는 날까지 난 나의 병명을 알지 못했다. 회진을 돌던 교수도 내게 그랬다. 병명을 (아직) 모르겠다고.....
후일 나는 내가 겪은 것이 '뎅기열'라고 결론 내렸다.
필리핀에서 본 댕기의 증상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입국한 지 3일밖에 안 된 걸 알았으면 의사들이 의심해 볼 법도 했는데
나는 몸이 마비된 체로 항생제만 맞으며 이틀을 혼수상태로 보냈다.
사실 '뎅기열'인걸 알았어도 별 방법을 쓰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뎅기열에는 약이 없다.
덕분에 난 고열로 뇌세포 일부가 파괴되어 한쪽 다리를 절게 됐다.
내 목숨과 바꾼 거 치고는 가볍다 생각하지만 평생 뛰는 걸 할 수 없게 됐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도 안 죽고 살아난 게 어디냐?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저승 구경은 2년쯤 전 보홀에 왔을 때이다.
밤늦게 호텔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경비실 차단기에 머리를 박고 기절을 했었다.
이 호텔은 로비에서 경비실 까지가 가벼운 경사의 비탈길이다.
늦은 시간 오토바이로 그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정면으로 차단기를 박았다.
당시 호텔 정문 차단기는 회색의 쇠막대기였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조명까지 어두워서 내겐 회색 쇠 봉이 보이지 않았다.
언덕에서부터 내려오던 속도로 거기를 정면으로 들이받았으니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충돌 후 약 5분간 정신을 잃었다고 경비들이 증언했다.
경비원들은 처음에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아마 10센티만 봉이 낮았거나 오토바이가 10센티만 높았어도 난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그 사건 후 그 호텔에는 차단기에 색깔도 칠해졌고 커다란 간판도 붙었다.
게다가 조명도 조금 밝아졌다.
나는 호텔 측에 LED 등을 봉에 설치하라고 주장했는데 그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일 이후 난 "제이슨 본"을 이해하게 됐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 많은 기억상실증의
사례들을 조금은 받아들이게 됐다. 나 역시 한동안 여러 가지를 기억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살았던 도시나 다녔던 학교, 친구의 이름 같은 것 말이다.
그 뒤로 2년 정도는 평온한 삶이었다.
사람 스트레스로 엄청난 멘탈 붕괴를 매일 반복하며 살지만 물리적으로 목숨이 위협받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잘 살다가 이번에 또 한 건을 했다.
도로 공사장 흙길에서 오토바이가 옆으로 쓰러졌고 약 2미터 정도 쓸려 나갔다.
솔직히 죽을 정도의 큰 사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맨땅에 쓰러져 생살이 갈리는 일이 어찌 보통 일이라 하겠는가?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