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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이 Nov 19. 2024

무제가 되지않은 이름-월간 에세이 6월호 게재

[무제] 마크 로스코

무제가 되지않은 이름



  밝은 ‘하늘색’을 띠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질 때 그 빛깔은 푸르러지고 마침내 바다의 색과 일치한다. 그 순간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모호해지기 시작하고 여러 칸의 팔레트 속 물감이 하나로 섞이듯 푸른빛은 한 평면을 이룬다. 이른 저녁 아기가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든 날, 난 평면의 바다를 바라보던 중 병원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동생에게 나의 이름을 물었다. 그건 일반적으론 아주 간단한 질문이지만 동생에겐 그렇지 못했다. 내 동생은 뇌출혈과 그 수술의 여파로 인지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때문에 대화는 가능하지만 횡설수설할 때도 많았고 기억의 조각이 잘못된 퍼즐로 맞춰지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동생이 말한 건 내 이름이 아니었다. 난 개명했다. 동생은 내 이전의 이름을 말했고 난 개명한 사실과 현재의 이름을 다시 말해줘야 했다.

신기했던 건 내 이름, 친구들의 이름, 본인이 데려온 강아지의 이름조차도 뒤섞인 이름으로 불렀지만 자신의 조카, 즉 내 딸의 이름은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말했다는 것이다. 동생은 본래 무뚝뚝한 성격에 표현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조카에 관해서는 ‘너무 이쁘다.’ 라며 꽤나 칭찬을 많이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카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표현만으로라도 최선을 다했던 듯싶다. ‘누나를 너무 닮은 것 같은데’ 라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웃었고 본인에게 안기지 않는 모습에 서운해하면서도 메신저 프로필사진은 항상 조카의 사진이었다. 특히 동생은 내 딸의 이름을 참 좋아했는데 그래서 기억을 바로 해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물었다.


 ‘보고 싶지 않니?’

 ‘당연히 보고 싶지.’

휴대폰 너머로 돌아오는 대답을 듣자 나는 공허함, 허무함, 슬픔, 막연함 등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뇌출혈이라는 병마는 동생의 인지뿐 아니라 두 눈의 시력도 앗아갔다.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고 싶은 조카의 얼굴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리고 내 딸에게 삼촌이라는 존재는 ‘아픈’ 삼촌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의 만남을 가끔 상상해 본다. 내 딸이 보는 삼촌의 모습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기에 그것을 내 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시켜줘야 할지 아직도 막연하다.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은 충분히 해줄 수 없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도 그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없다. 나는 두 사람 모두가 안타까웠다. 밖을 바라보자 푸른 평면의 바다는 어느덧 어둠에 덮여 등대와 어선의 빛만이 그 존재를 내비쳤다. 동생이 보고 있을 캄캄한 흑막과 같은 바다. 마크 로스코의 평면의 그림 ‘무제’가 담고 있는 감정들을 보는 듯 깊은 내면에서 수많은 심경들이 차올랐다.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로스코의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난 그림 앞에 앉아 한참 동안 그림들을 바라봤었다. 그림의 크기와 분위기, 어두운 조명의 공간이 주는 압도감을 초월하는 그림 안의 심연.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본 사람들의 10명 중 7명은 그의 작품에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난 울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을 보면서 휘몰아치는 감정을 꾹꾹 누르고 숨을 고르게 되었다. 동생과의 통화도 그랬다. 울음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울지 않았다. 내 슬픔보다는 이전처럼 인지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존재들을 볼 수 없는 그의 비극이 더 힘들 것이기에 나는 감정을 눌렀다.

마크 로스코 <무제> 1969

 이름은 우리를 정의한다. 어쩌면 기억의 저 깊은 곳에서 우리를 인지하는 하나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동생에겐 나의 옛 이름이 자신의 ‘누나’를 가장 잘 떠오르게 하는 이름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기억하는 동생의 뇌에는 무제가 가득하다.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 혹은 잘못 알고 있는 것들. 그 이름들은 무제가 되어 동생의 뇌를 부유하고 있다. 이제 가족은 그 무제에 다시 이름을 걸어주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

  동생의 목소리를 들은 그날, 나는 쉽사리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동생에게 무엇부터 알려줘야 하고 되짚어줘야 할까, 방안의 경계 없는 어둠 속에 무엇도 쓰이지 않은 이름표들이 돌아다니는 듯했다. 그러던 중 아기가 내 팔을 찾아 품 안에 들어왔다.

동생에게 무제가 되지 않은 나의 딸.

삼촌의 상태를 훗날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자신이 ‘이름 불릴 수 있는 아주 어여쁜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난 품 안의 아기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딸의 머리카락, 손으로 토닥인 아기의 동그란 엉덩이, 그리고 깊고 긴 숨소리.

그 모든 것이 위안이 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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