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ant pumkin] 야오이 쿠사마
나비
“아냐!”
여느 때와 같이 놀이터의 미끄럼틀에 위풍당당하게 앉은 딸이 갑자기 놀라며 일어섰다. 자세히 보니 미끄럼틀에 애벌레 두 마리가 꼬물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요 근래 아기는 벌레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건 책이나 영상, 혹은 곤충상자 안의 곤충들에 해당할 뿐 실제로 곤충을 '인식'하며 마주한 적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애벌레를 비롯한 곤충들을 무서워한다. 어릴 적 길가에 사마귀가 있으면 그 길로 가지 않고 빙 돌아서 다른 길로 갈 정도로 곤충을 싫어했다. 내가 그랬듯 내 아기에게도 곤충은 신기함과 낯섦, 두려움을 동반한 생명체이기에, 난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딸아이를 집까지 헉헉대며 안고 들어와야 했다. 아기는 집에 와서도 바닥을 살피며 머리카락과 먼지에도 손가락을 가리키며 ‘아냐! 아냐!’를 반복했다. 심지어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할 때까지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채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와 남편은 아기가 곤충에 대한 심한 트라우마 혹은 공포를 가지지 않도록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난 에릭칼의 ‘아주 배고픈 애벌레’, 뽀로로책 시리즈인 ‘크롱의 작은 친구 꼬물이’를 보여주며 애벌레는 배가 통통해지면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또한 남편이 주문해 준 <알, 애벌레, 고치, 나비> 단계로 이루어진 몬테소리 나비모형시리즈를 아기와 함께 만지작거리며 꼬물이인 애벌레가 이렇게 화려하고 나풀나풀한 나비가 됨을 말해주었다. 사실 참 아름답지 않은가? 보기엔 추한 생명체인 애벌레로 탄생하지만 나름의 성장을 거치며 살이 찌고 몸이 커지면 인고의 고치 시절을 거쳐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비로 세상으로 날개를 펼친다는 것이. 아기는 그간 이 과정을 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알과 애벌레는 아가, 나비는 엄마라고 일컬어도 그 개체가 한 과정이라는 것은 이해한 것이다. 어제의 산책길에서 아기는 애벌레를 봐도 도망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쓰고 있던 모자를 올려 자세히 들여다보고 애벌레에게 안녕이라고 손을 흔들며 눈은 새로운 호기심에 반짝였다. 딸의 입꼬리는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산책길에 애벌레가 몇 마리인지 찾아다니며 세어보고 집에 돌아가자고 하니 더 보고 싶다고 표현했다. 그리곤 무언가를 찾는 시늉을 하며 ‘엄마엄마’를 말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찡하고 대견했다. 아기는 나비를 찾는 것이었다.
숭고한 인고의 결과물이자 애벌레의 엄마인 찬란한 나비.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는 정신질환을 예술로 승화한 일본의 예술가다. 야요이 쿠사마는 불우한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공황장애 및 강박증과 환영으로 고통받았다. 바라보는 물체마다 끊임없이 좁쌀 같은 원형의 환영을 보았고, 그 점들이 세상을 가로막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환영을 캔버스로 옮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도트(dot)는 곧 야요이 쿠사마 그녀만의 독특한 상징이 된다. 두려움과 편집증의 영향으로 그녀는 끊임없는 반복과 이미지의 증식과 확산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호박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촘촘하고 세밀한 점(dot)은 그녀가 지닌 강박증이자 그것을 해소하는 치유의 과정을 의미한다.
“예술이 아니었다면 난 진즉에 자살했을 것, 그래도 300년 동안 예술을 하고 싶다.”
야오이 쿠사마가 가진 두려움과 그녀가 겪은 고난은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고통 속에서도 삶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갈망과 애정이 녹아있으며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노력이 존재한다.
아직 아기가 느끼는 공포의 대상은 곤충, 핼러윈유령, 해골 등에 불과하여 어른이 되어 느끼는 안전, 병마, 죽음, 상실의 고통에 가까운 실제의 삶에 닿아있는 두려움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아기가 느끼는 것이든 어른이 느끼는 것이든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결국 내 딸아이가 애벌레에 대한 다양하고 긍정적이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한 것처럼 우리 삶의 일상적인 두려움도 끊임없이 여러 방식을 이용하여 밝고 건강한 생각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생각은 중독성이 있어 계속해서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생각들을 끌어당긴다. 때문에 우리의 삶에 고난이 찾아올 때 그 고통에 처박혀 부정적인 생각들에 빠져든다면 끝내 그 생각들에 뒤덮여, 일어서 나오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삶의 두려움 속에서도 나비와 같은 개체, 점으로 가득한 애교스러운 호박 등 인생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찾고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고통의 시간은 매우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딸아이가 아기만의 작은 공포였던 벌레공포를 극복해 나간 것처럼 나와 남편은 앞으로도 아기가 삶의 두려움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긍정적인 경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노력할 것이다. 날개 없이 태어난 애벌레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사람의 발에 밟히기도 하지만 그 생존의 어려움을 거쳐 누에고치라는 은은한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듯 가족의 행복하고 영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린 모두 아름다운 나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