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사는 사람이다. 눈앞 닥친 일에 전전긍긍하며 산다. 멀리 가자는 말 부담스럽다. 여러 날 가는 것도 버겁다. 밥벌이를 쉴 수 없는지라 범도 투어도 사양했다.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긴 배포 큰 분께 낚여 일박이일 섬 구경을 하고 왔다.
지상에 있는 역에 서서 기차를 기다린다. 반대편에서 들어오는 기차가 바람을 일으킨다. 머리카락이 날린다. 차가운 볼에 닿는다.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 머리를 감싸고 목에 한 번 둘러 질끈 묶는다. 귀와 볼이 따뜻해진다. 날은 아직 어둡다. 내가 탈 기차는 아직 오지 않는다.
나는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서 내릴 것이다. 거기서 KTX로 갈아타고 목포로 간다. 목포에서 완도로 이동해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보길도라는 섬으로. 이름만 들어본 섬이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섬에서는 어떤 일이 있을까? 이 또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깜깜한 새벽을 뚫고 기차가 들어온다.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가방을 들고 기차를 탄다.
기차 안에서 졸면서 새벽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다 창 밖을 보니 해가 높아지고 있다. KTX라는 기차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나를 목포에 데려다주었다. 역에 내리자마자 코에 들어오는 공기가 다르다. 비릿하다. 미역 냄새가 난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짭짤하다. 그리고 따뜻하다. 새벽 도심의 출근 시간 역사를 가득 채웠던 날카로운 공기는 없다. 겨우 세 시간이 지났는데 미역 냄새가 나는 짭짤한 공기가 있는 따뜻한 땅에 서 있다. 신기하다. 설렌다. 역사 안에 큰새께서 미소를 짓고 서 계신다. 우리는 어미새를 만난 새끼새들처럼(?) 쫑쫑쫑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유달산으로 가는 길에는 배롱나무가 가로수가 있다. 아주 오래전 버스를 타고 이 길을 지났을 때는 여름이었다. 꽃이 한창이었다. 기억은 삼십 년 넘은 시간을 꺼내 보여준다. 초겨울 빈 가지에 꽃들이 다시 붉게 번진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 노적봉을 짚과 섶으로 둘러 군량미가 산더미같이 쌓인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해서 적을 공략하였다고 하는 노적봉을 보고 이난영 노래비에 오른다. 생각 없이 굽 있는 발목 부츠를 신고 온 새끼 새 두 마리는 갑자기 올라가는 돌길과 돌계단을 만나자 버벅거린다. 큰새 선생님께서는 이미 노래비에 올라 뒷짐 지고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의 앞날이 보인다. 헥헥헥.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일본 음계인 7.5조 율격이고 ‘황성옛터’는 우리나라 시조의 음률을 따른다는 설명도 해주셨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그 당시 만들어진 대부분의 노래들도 7.5라 한다. 그 당시에 만들어진 교가들도 대부분 그렇단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다니셨던 중학교 교가 가사를 읊으신다. 세상에나... 난 한 글자도 기억 안 나는데!
내려오는 길 정오에 포를 쏘았다는 ‘오포’도 보고 그 옆 정자에도 올라갔다. 목포가 한눈에 다 보였다. 목포는 고층 아파트도 있고 납작한 한옥도 있고 바다도 보이고 섬도 보이는 다채로운 매력이 있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