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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an 06. 2024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잠결이었다. 8월에 있을 어떤 계획에 대한 문자를 보았다. 나는 8월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내게 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보낸 것 같아 문자를 보낸 분께 전화를 걸었다. 내게 보낸 것이 맞는단다.

전화를 끊고 멍한 정신을 수습한다. 8월이면 아직 반년도 더 남은 뒤의 일이다. 지금 정리하고 있는 글의 결과물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 후의 계획이 먼저 잡혔다. 막연하다.


오래도록 오늘만 산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미래는 바라보지 말고 지금을 잘 견디려는 마음이었다. 미래가 불확실했던 시절이 길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 계획을 세워도 어그러지는 일이 잦았다.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꿈도 묻어버렸다. 눈을 들어 멀리 보는 일을 피했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갑자기 허기가 진다. 이미 점심때가 지났는데 아직 한 끼도 먹지 않은 게 생각났다. 김치와 밑반찬 몇 가지를 꺼내고 밥을 푼다. 밥 한 숟갈과 김치 한 쪼가리를 입에 넣고 씹는다. 얼추 밥 한 공기를 다 먹어가자 허기가 사라졌다.


오늘 이 순간의 허기를 면하기 위해 밥을 먹었지만, 몸은 그 밥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음식이 소화되어 몸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하루가 걸린다고 배웠다. 그러니까 음식을 먹는 일은 지금이 아니라 하루 뒤의 삶을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허기는 지금이 아닌 다가오는 시간을 잊지 말라는 몸의 울림일 수도 있겠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도 지금과 연결되어 있다는 깨우침이겠다. 사는 일은 오늘에서 내일로, 지금에서 미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경고이겠다.


오늘이 아닌,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의 시간에 대한 계획이 생겼다. 그날이 올까? 그 시간이 올까? 아직 낯설다. 자꾸 되뇐다. 그러다 보니 점점 또렷해진다.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린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입 안을 데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마신다. 이 또한 지금과 더불어 내일을 생각하는 조심이다.


배경음악은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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