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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01. 2024

나는야, 카푸치노의 여왕

날이 맑아요. 그제부터 추위도 풀렸습니다. 창문을 여니 아침 공기가 시원하군요. 기지개를 켜고 국민체조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습니다. 운동화를 신고 동네 산책을 나섭니다. 길 하나 건너 조금만 건너면 약수터를 안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어요. 그 언덕길 아래 도서관이 있고, 도서관 옆길을 따라 작은 카페들이 몇 개 있지요. 거기까지 산책을 하는 겁니다. 눈치챘겠지만 산책은 핑계고 커피 마시러 가는 길입니다.


거기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어요. (이건 귓속말인데요, 키가 훤칠한 총각이 사장님이에요. 후훗) 혼자서 운영해요. 몇 가지 구운 과자를 만들고 커피를 맛있게 만들어서 줍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맛있고 레모네이드도 직접 레몬을 짜서 만들어주지요. 내가 좋아하는 카푸치노는 거품이 아주 일품이에요. 폭신폭신하고 쫄깃쫄깃해요.


오늘도 나는 카푸치노를 주문해요. 사장님이 스마일 도장이 여덟 개나 콩콩 찍힌 카드를 주네요.


“오늘은 커피값 안 받을게요. 이거 사용하세요.”


지난번에 아들이랑 왔을 때 아들이 엄마는 왜 쿠폰 도장 안 찍냐고 물어봤었어요. 아마 그 말을 들었었나 봐요. 자주 오셨으니 그냥 한 잔 드린다는 말만 해도 기분이 좋았을 텐데 미리 쿠폰을 만들어두고 기다렸다가 주니 정말정말 기분이 좋아요. 심장이 살짝 발그레해지는 기분도 들어요. 게다가 쿠폰 카드에 내 별명까지 써놨어요. 크크큭.


‘카푸치노의 여왕님’


얼마 전에 친구와 왔었어요. 그날도 나는 카푸치노를 시켰죠. 잔 위에 빵실 부풀어 올라온 쫀쫀한 우유 거품 위에 시나몬 파우더는 뭉치지 않게 살살 뿌려달라고 했죠. 거품 어느 부분을 입에 대도 코끝에 계피 향이 스치도록요. 달큰하면서도 알싸하게 올라오는 계피 향을 음미하면서 입술에 부드러운 우유 거품이 닿을 때, 피곤이 사르르 풀어지고 따뜻해지거든요. 마치 여왕이 된 기분이에요.


기분이 마구 좋아져서 카페 앞 테이블에 앉아서 까치가 깍깍거리는 야산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내가 이 구역의 카푸치노의 여왕이시다’를 외쳤는데 사장님이 그 말을 들었나 봐요. 그걸 기억했다가 카드에 써주셨네요. 살짝 망측한 기분이 듭니다만 입술은 헤헤 웃고 있어요.


삼 년 전 일이 과거의 오늘에 떴어요. 이 카페는 작년에 문을 닫았어요. 사장님이 원래 축구선수 출신이라 몸을 움직이는 다른 일을 하고 싶으셨나 봐요. 잔을 따뜻하게 데워 고봉으로 올려주는 우유 거품을 더이상 맛볼 수가 없어서 나는 아쉽고 또 아쉬워요. 사장님이 만들어주었던 쿠폰은 아직도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 있고요. 그 쿠폰을 볼 때마다 그때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요. 마치 따뜻하고 푹신하고 빵빵한 카푸치노 우유 거품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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