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으로 뉴스가 시끌시끌하다. 큰 병을 진단받고 어렵게 예약했던 진료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난감해하는 글을 보았다. 언제 다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글도 있다. 먼 곳에서 서울 대학병원으로 항암치료를 하러 다니는 지인이 생각났다.
그녀와는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넘는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다. 코로나 이후로는 가끔 전화를 하며 서로의 안녕을 주고받는다. 그녀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은 지난가을이다.
“언니, 내 말 듣고 놀라지 말아요.” 씩씩하고 명랑한 그녀답게 나를 먼저 살피는 말을 해준다. 여름에 우연히 병을 발견했고 생각보다 좋지 않아 급하게 큰 수술을 했단다. 지금은 고비는 넘겼다고 한다. 요즘은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치료를 다닌다고 했다. 만나보고 싶다는 내 말에 아직은 사람 몰골이 아니라고 예전 모습이 돌아오면 보잔다.
그때, 마치 달마다 발행되는 작은 책자에 실린 이야기처럼 자신이 머리를 밀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 주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머리가 너무 많이 빠져서 단골 미장원에 전화를 걸었단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를 반가워하는 원장에게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싶다고 했더니 원장은 아주 잠깐 말을 멈추더란다. 그리고는 저녁 예약 다 취소해 둘 테니 편하게 오라고 했단다. 항상 긴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던 그녀에게 왜 머리를 자르느냐 묻지 않는 그분의 배려에 나도 마음이 뭉클했다.
이제 막 사십 대를 벗어난 그녀의 소식은 안타깝고 서러웠다. 하지만 뭐라 위로해 줄 말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괜찮다고 놀라지 말라고 나를 미리 다독이는 그녀라서 예전처럼 둘이 농담 몇 마디를 주고받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는 혼자 울었었다.
최근 의사 파업 뉴스를 보다가 그녀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본다. 전화를 걸기 전에 마음의 약장을 뒤져 ‘다정’과 ‘명랑’을 한 줌 꺼낸다. 그녀는 잘 지낸다고 한다. 지금 뉴스를 보면 수술도 제때 받고 치료도 밀리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아직 항암이 끝나지 않았지만 먹는 약으로 바뀌었단다. 조금 안심이 된다.
올봄엔 꽃을 같이 보자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때 그 시절처럼 꽃 같은 미남들도 보러 다니자고 농담을 한다. 나는 이제 무릎이 쑤셔서 스탠딩은 무리라고 하자 그녀가 깔깔 웃는다. 응원봉이 없던 시절, 경찰봉을 구해 꽃미남 가수 오빠를 응원하던 그녀의 사춘기 시절 덕질의 역사를 들으며 같이 웃는다.
전화를 끊고 그녀에게 꽃을 선물했다. 프리지어 한 다발. 이틀 후 그녀에게서 꽃 사진이 왔다. 유리 화병에 꽂힌 프리지어가 노랗고 환하다. 벽에 걸린 액자와 잘 어울린다고 그녀가 좋아한다. 꽃이 피면 필수록 향기가 진해질 거라고 기뻐한다. 그녀가 보내준 사진을 보다가 나도 누군가에게 꽃을 받고 싶어졌다.
‘꽃 사죠. 프리지어, 노랑 프리지어.’ 오늘의 애인에게 문자를 보낸다. 보내고 보니 골목 어귀 지키고 섰다가 지나가는 꼬맹이들 돈 뜯어내는 말투다. 공손하게 다시 보낸다. ‘노란 프리지어 꽃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어요♡♡♡’ 애교도 한 줌 뿌리고 싶지만 없다. 대신 하트 세 개 붙여줬다. 크게 인심 썼다.
어제 꽃이 도착했다. 아직 몇 송이 피지 않은 상태라 향은 없다. 연두색 줄기가 탄탄하다. 유리병에 꽂으려고 줄기 밑동을 자르는데 싱싱한 풋내가 올라온다. 꽃을 보내준 애인에게 사진을 보낸다. 매일 피는 걸 보는 재미가 있겠다는 답장이 온다.
아침에 거실에 나와보니 어제보다 꽃이 많이 피어있다. 꽃을 햇살이 들어오는 탁자로 옮긴다. 햇살이 툭툭 건들자 꽃은 더욱 선명하게 노랗게 피어난다. 공중에서 햇살 금빛 입자와 프리지어 노랑 입자가 만난다. 부딪힌다. 노랑이 팡 터진다. 금빛이 팡팡 터진다. 섞인다. 휘돈다. 출렁거린다. 거실에 노랑 프리지어 꽃향기가 가득하다.
내가 꽃을 보내준 애인의 거실도 노랑 향기가 가득하겠다. 내게 꽃을 보내준 애인에게 오늘의 사진을 보낸다. 향기까지 보낸다. 잘 받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