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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26. 2024

달빛은 해의 안부


밤 아홉시,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선다. 1층 현관문을 열자 달이 반긴다. 둥글고 환한 보름달. 어제가 음력 정월 대보름이었으니 오늘도 달이 둥글고 크다. 어제는 비가 와서 달이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 오후부터 구름이 걷히더니 달이 나왔다. 어제 내린 비가 뿌연 먼지를 씻어가서 어둠이 깊고 투명하다.


어둠을 고요히 채우는 달빛. 나는 그 달빛이 좋다. 내 눈썹에 닿는 맑은 빛. 아마 출근만 아니었으면 달을 따라 밤 산책을 했으리라. 달빛과 함께 하는 밤 산책은 매력적이다. 나보다 몇 걸음 앞에 걸으며 머리카락에 은실을 몇 가닥 드리워주기도 하고 이마를 만져주기도 한다. 눈썹에, 콧등에 차라락 내려앉아 반짝거리기도 하고 입술을 만지며 달큰한 장난을 친다. 큰 나무가 으슥한 그늘을 드리운 곳으로 나를 이끌면서 귓불을 간지럽힐 때도 있다.


그러다가 슬쩍 내 뒤로 간다. 가만히 어깨를 쓰다듬어준다. 낮 동안 얹고 있던 시름을 후 불어서 날려준다. 걱정으로 얼룩진 등을 쓸어준다. 어깨와 등이 가벼워지니 걸음도 가볍다. 발목을 달빛에 적시며 내 그림자와 걷는 길은 돌멩이도 빛나는 것 같다.


가끔은 흉곽을 크게 부풀려 달빛을 마시기도 한다.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두 팔을 들어 올리면 둥실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아카시아가 지천으로 피는 오월에는 꽃향기에 취해 더 밤하늘을 날아보고 싶어진다. 물론 꽃 향기 아닌 다른 것에 취할 때도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빈 잔에 달빛을 채워주는 애인이 함께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후훗.  ​


어떤 사람들은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고 비웃는다. 태양에 기대 빛을 얻는다고 놀린다. 하지만 달을 소재로 한 수많은 노래와 시와 그림을 보면 지구인에게 달이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알 수 있다. 나도 그렇다. 출근길에 만난 대보름달을 보면서 '달이 떴어. 환하고 예쁜 보름달.'이라고 내 애인들에게 달빛 물든 연애편지를 보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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