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가 지난 병동은 고요하다. 어제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그렇다. 다행이다.
“아아아아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어제와 같은 상황이다. 저녁을 먹고 목욕을 시켰기 때문에 오늘은 푹 잘 것이라는 인계를 받았다. 인계대로 몇 시간은 안 깨고 잘 잤다. 어제는 인계를 받던 시간에도 낮은 비명 같은, 울음 같은 저 노래가 병실을 빠져나와 간호사실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밤이 깊도록 병동 복도를 멈추지 않았다. 너무 오래 노래가 그치지 않아 다른 환자들을 깨울까 봐 걱정스러웠다.
벌떡 일어나 병실로 간다. “아아아, 아아.” ‘어린새’의 노래가 나를 맞이한다.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얼른 ‘어린새’에게 다가간다.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제 막 잠이 깬 아이의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본다. 요즘 폐렴 치료를 받느라 고생해서 입술이 부르터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천정으로 눈을 돌린다. 노래한 적이 없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나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돌아선다.
“아아, 아아, 아아아,”
다시 ‘어린새’의 노래가 시작된다. 이럴 줄 알았다. 다시 ‘어린새’에게 다가가 가슴을 다독여준다.
“자야지, 다들 주무시잖아. ‘어린새’도 더 자. 아직 깊은 밤이야.”
나를 흘긋 바라본다.
“눈 감아.”
한 손으로는 ‘어린새’의 가슴을 다독다독 두드려주면서 귓가에 대고 ‘자장자장, 자장자장.’ 속삭여준다. 스르르 눈을 감는다. 어린 아기를 재울 때처럼 눈꺼풀을 쓸어내려 준다. 속눈썹이 살짝 떨린다. 이마를 쓰다듬는다. 속눈썹의 떨림이 멈춘다. 말랑한 귓불을 조물조물 만지작거린다. 숨결이 깊고 편안해진다. 아기처럼 잠이 든다.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마흔 살이 넘은 ‘어린새’를 재운다. 귓불을 계속 만져 준다. 귀걸이를 했었나 보다. 귀를 뚫었던 흔적이 있다. 어떤 디자인의 귀걸이를 좋아했을까? 작고 반짝이는 귀에 딱 붙는 스타일이었을까? 아니면 크고 둥그런 링 모양? 길게 치렁치렁한 개성 넘치는 귀걸이일 수도 있겠다.
몇 년째 병원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어린새’의 머리는 아주 짧다. 귀걸이를 하고 다닐 때는 머리도 길었겠지. 편안하게 잠든 얼굴을 본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다. 귀걸이를 하고 긴 머리를 하고 친구를 만나러 다니던 때에는 화장도 했었겠지.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본다. 귀여운 얼굴이다. 지금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지만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친구를 만날 수 있던 시절에는 재잘재잘 수다도 많았겠다.
나는 ‘어린새’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살그머니 손을 뗀다. 그러자마자 잠이 깨는 듯 몸을 뒤척인다. “으으음.” 낮은 신음이 가지 말라는 듯 내 손을 잡는다. 나는 재빨리 다시 ‘어린새’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얇은 환자복에 감싸인 심장의 박동이 느껴진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깊게 잠들지 못하는 ‘어린새’ 옆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사이 삼십 분이 지났다. 다행히 다른 병실이 조용하다. 이 시간이면 밤마다 집에 간다고 기저귀를 벗어 던지던 10호실도 조용하고 애기 찾으러 간다고 보따리를 싸는 12호실도 조용하다.
어쩌면 며칠째 잠 못 들고 투정하는 마흔 살 넘은 ‘어린새’가 걱정스러워, 그녀들은 꿈속에서 누군가의 딸, ‘어린새’를 자장자장 재우고 있는 걸까? 그녀들도 아기의 엄마였던 시절이 있으니까 잠투정하는 아기를 달래듯 꿈에서 ‘어린새’를 안고 어르고 업고 다독이느라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