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생 장여사

by 최희정

내 엄마 장 여사는 음력 3월 하순이 생일이다. 양력으로 하면 4월 말이나 5월 초다. 백 가지 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태어나셨다. 하지만 엄마가 살아온 삶은 꽃처럼 곱지만은 않았다.



장 여사가 태어난 1935년은 일본이 조선을 점점 더 심하게 수탈하던 시기다. 1936년에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부터 전쟁이 끝나던 1945년까지 쌀과 온갖 곡식들을 빼앗아 조선사람들을 굶주리게 했으며 전쟁물자로 사용하기 위해 놋그릇, 심지어 놋수저까지 쓸어갔다.



장 여사는 그 당시 나무젓가락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던 일을 기억한다. 어린 장 여사는 소학교를 다녔다. 원래 보통학교였으나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의해 소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본인 선생들이 학생들이 조선어를 말하는 것을 감시하고 혹시라도 조선말을 사용하다가 걸리면 벌점을 주고 매를 때렸다고 한다. 광복되기 바로 전에는 가끔 대포 쏘는 소리가 나기도 했단다. 일본의 군수품 중의 하나인 정어리기름을 뽑아내는 공장을 하던 부친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고난은 시작됐다. 바닷가 마을인 후포리를 떠나 원주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영월로 가서 살게 된다.



1950년 6월, 중학생이던 장 여사는 서울 사촌 언니의 집에 방문했다가 전쟁을 맞는다. 하얀 반소매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인 중학교 교복 차림으로 피난길에 나섰다고 한다. 그녀는 피난길에 기차가 끊긴 철로가 있던 터널 안에서 잤던 걸 잊지 못한다. 바로 앞에 가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서로 어깨를 잡고 걸어야 했고, 밤에 담요를 두르고 누웠는데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지 않아 온밤을 샜다고 한다. 열다섯의 나이에 그랬다고 한다. 나의 열다섯 살을 포개 본다. 쉰 중반인 지금까지도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춥고 배고파본 적이 없다. 아직도 전쟁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엄마의 모습에서 열다섯 살 단발머리 중학생이 보인다.



강원도 동쪽 바닷가 출신인 엄마가 충남 연기군 서면 월하리가 본적인 남자를 서울에서 만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다. 충청도가 고향인 내 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서울에 남아 직업 군인이 되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내 엄마도 전쟁 중 피난을 다니다가 병이 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서울로 돈을 벌러 오게 되었다. 만약 전쟁이 아니었으면 내 엄마와 아빠가 서울에서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혼하여 다섯 자식을 둔다. 장 여사는 무엇보다 자식 교육을 열심히 하였다. 서울에 땅 한 조각 집 한 채 없이 시작한 살림이지만 집을 사고 땅을 사는 것보다 학교를 보내는 것이 먼저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70년대 초반 가난한 집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으로 돈을 벌러 가는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큰언니가 중학교에 갈 무렵 우리 집은 많이 가난했지만, 엄마는 언니를 학교에 보냈다. 결혼 후 지인 중에 내 언니와 동갑인 분이 가정형편 상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공장에 다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집도 형제가 다섯이었는데 자기와 세 살 아래인 여동생은 공장에서 돈을 벌었고 오빠와 밑의 두 남동생은 고등학교까지 다녔다고 한다.



그때서야 내 엄마 장 여사가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를 알았다. 두 살 터울로 주렁주렁 매달린 자식들을 딸이건 아들이건 구별하지 않고 대학교육을 시킨 것은 대단하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그렇다는 답을 못하겠다.



태어나서 스무 살이 되는 1955년까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겪은 내 엄마 장 여사, 그리고 장 여사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역사의 거센 물살에 흔들리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감사를 보내고 싶다. 잘 버티셨어요. 덕분에 내가 있어요, 고마워요.



이분들의 대부분은 여든 살이 넘었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머물고 계신다. 안타깝게도 지키려고 애쓰고, 애써서 지켜낸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장 여사들이 지켜낸 아들딸들은 자신들 대신 부모님을 돌봐주는 요양시설에 낼 돈을 벌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2022년 5월 오늘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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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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