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평온함
아주 가끔씩, 갑자기 몹시 사랑하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갑자기 사랑의 불필요함을 강렬하게 느끼곤 했다. 그게 항상 이상했나. 섭섭했나. 혹은 쓸쓸했나.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말이다. 어쩌면 휘청이는 스스로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로맨스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친구와 메신저로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하게 된 생각이다. 로맨틱에 빠진 사람이 경험하는 엉망진창의 상태. 그 엉망진창의 상태를 견딜 수 있는 사람과 견디지 못하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사람을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꼭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그런 사람으로. 나를 굳이 말해보자면, 엉망진창의 내 모습과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태의 사람이다. 나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내 일상이 무너지는 만큼 나 자신이 무너진다. 무너진 나 자신으로는 로맨스도 내 삶도 지키기 힘겹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그 모든 과정 안에서 로맨틱과 일상 모두 어그러지는 경우의 수밖에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생각해본다.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로맨틱이었다고!
예를 들어 평상시의 내가 깔끔하게 정리된 해변가에 서있는 상태라고 해보자. 바다는 잔잔할 때도 있고, 파도가 거셀 때도 있지만 멀찍이 해변가에 서있는 나는 보통으로 이성적일 수 있다. 평온한 시선으로 파도에 대해 생각하고, 너무 깊은 파도가 들이칠 때는 몸을 뒤로 물려 몸을 사릴 수 있다. 그런데 로맨틱에 빠져든 나는 마음에 드는 조개껍데기를 줍기 위해 파도 안에 발을 내딛는다.
옷을 버리고 싶지 않아 양말도 신발도 잘 벗어 정리해보지만, 밀려오는 파도에 바짓단이 젖는 일을 막을 수 없다. 상황은 자꾸만 내 컨트롤을 벗어나고, 바짓단을 적신 파도가 끝없이 밀려와 결국 양말도 신발도 쓸려가 버리는 그런 상태. 난 그런 상태가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싫다. 내 일상을 지키는 일은 나에게 몹시 중요하다. 그러니까 로맨스보다 더.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는 상태는 버겁다. 나의 일상이 어긋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서럽고, 안달 나는 그런 감정. 좀처럼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내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몇 차례 겪으면서 생각했다. 아 정말 못 해 먹겠다고. 너무 스트레스라고.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기준으로, 내가 가진 정체성을 기준으로, 내가 로맨스를 경험하는 일이 얼마나 드문지를 아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싶고, 그만큼 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빠르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표현을 한다. 이만큼의 로맨틱이라도 로맨스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의 로맨스도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한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눈치채 준다면 더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