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볼 수 있는 탁 트인 풍경
지금보다 좀 더 어렸던 나는 지금의 나에 비해서 고통을 느끼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었다. 별일이 있어서, 혹은 별일이 없더라도 쉽게 지쳤고 고개를 떨구어 멀리 있는 한 점을 바라봤다. 사람에게 집중하는 일이 지칠 때는 사람이 아닌 무엇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게 도움이 되었다. 삶 그 자체에 지칠 때에도 내 삶과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다른 풍경을 보는 게 효과적이었다.
그 시절에는 매일같이 한강을 지나다녔다. 실제로 강변을 거니는 일은 드물었지만 전철을 타고 강북과 강남을 오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한강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전철이 한강으로 접어들면서 바뀌는 풍경과, 공기와, 소리가 좋았다. 잠깐의 시간 동안 새로운 공간에 속해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순간이면 듣던 노래도 끄고 뒤바뀐 공간의 소리에 집중했다.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고 바뀐 풍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른 아침의 옅은 한강, 안개가 자욱한 한강, 노을 지는 한강, 비 내리는 한강, 해가 쨍하게 비치는 한강. 그런 한강을 줄곧 보며 사진을 찍고선 오늘의 한강이야 하고 말하곤 했다. 잠들어 버리거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그날의 한강을 보지 못한 날에는 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그만큼의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서울에 살기 시작한 지 그다지 오래지 않은 시기에는 기관사님들이 때때로 공지사항이 아닌 문장을 전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해지는 한강의 모습이 유독 아름다웠던 어느 날 스피커를 통해 전철 내부에 퍼지는 목소리를 들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창밖을 보시면 한강을 지나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힘들고 지쳤던 모든 일들 털어버리시고, 행복한 저녁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다정하게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깜빡 울어버릴 뻔했다. 동시에 남사스럽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날 뻔한 것도, 기관사님의 응원도. 하지만 둘 다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때도 분명 알고 있었다. 눈물이 날 뻔한 것도, 기관사님의 목소리도.
그만큼 한강을 많이 오가지 않은 지 한참 되었다. 언제부턴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가 바뀌었고, 지금에 와서는 도달해야 하는 분명한 목적지가 없다. 그래서 부러 강변을 찾곤 한다. 강 건너의 풍경 그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그 위로는 하늘이 펼쳐지는 장소로. 그렇게 깊게 숨 쉬고 싶어 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