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보지 못했을 장면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산속의 이 차선 도로를 산책했다. 저 너머의 산을 보니 온통 단풍이 들어있었다. 붉은색과 노란색 초록색이 뒤섞인 산을 보면서, 단풍이 이제야 저렇게 붉다니 이미 겨울이 다 온 줄 알았는데 이상하다.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너무나도 가을 같은 색이었다. 여전히 집 안에만 있었다면 그 가을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침 내가 그 길 위에 서있다는 사실이 몹시 필연적으로 느껴졌고 작게 안도했다. 그러고 보니 집 앞의 은행나무도 온통 샛노랗게 물들어있었다. 10월 말. 집 안에 오래 머물러서 그런지 계절을 잘 모르겠다.
그 와중에 나는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자려고 누웠는데 기침이 멈추지를 않아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 마시는 날의 연속이었다. 놀란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나 본가로 향했다. 혼자 지내기에는 몸도 마음도 다 아픈 것 같았고, 혼자 지내는 집은 그날따라 유독 넓고 추웠다. 본가에 도착해 동생이 쓰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몸이 아파 마음도 놀란 건지 마음이 놀라 몸이 더 아픈 건지 모르겠다고. 갑자기 일어난 복잡한 일이 내가 아픈 와중이라 더 쉽게 닥친 건지 아니면 어찌 되었든 간에 일어날 일이었는지. 마음이 자꾸만 붕 떠있으니 몸도 좀처럼 낫지를 않아 우선 몸을 건강히 만들자고 다짐했다. 몸을 얼추 회복한 후에는 다시 살아가야 하니까. 이왕이면 몹시 살고 싶었고 제대로 살고 싶었다. 잠시 아파 삶의 계획이 살짝 어긋났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숨을 골랐다.
그러고 보니 단풍 사이의 숲길을 산책하던 중에 막 도로를 가로지르기 시작한 검정 송충이를 만났다. 사람의 다리로 몇 걸음 정도면 충분한 그 거리를 저 송충이는 얼마의 움직임 끝에 도달할 수 있을까. 무심코 지나치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 검정 송충이에게 다가갔다. 그냥 있던 쪽에서 사는 게 더 안전한 선택 아닌가 싶었다. 도로 맞은편의 산으로 가기 위해 송충이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이왕 건너기로 했다면, 가끔씩이나마 오가는 자동차에 치여 죽거나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지 않기를. 도로의 맞은편까지라도 무사하게 건너 그 너머의 산속 어디론가 도착하기를 바랐다. 내가 옮겨줄 수는 없어도 지켜봐 줄 수는 있지. 주변을 맴돌며 골똘히 쳐다보는 중에도 송충이는 계속해서 움직여 반대편 끝을 향해 간다.
사실은 내가, 나를 위해 송충이가 무사히 끝가지 도달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보고 싶었던 이유는 아무리 고쳐 써도 자꾸만 뻔한 말뿐이라 그냥 적지 않겠다. 다만 나는 한 번 더 안도했고 다시 길을 조금 더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