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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Sep 13. 2023

강화길의 <풀업> 속 심리분석

아들러 출생순위, 반동형성, 투사


오늘은 이번 현대문학 PIN 시리즈에서 출간된 강화길 작가님의 <풀업>을 리뷰하고 소설 속에서 공부해 볼 만한 심리이론을 분석해 볼게요/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은 지수는 매일 밤 꿈을 꿉니다

그녀의 삶에 스쳐 지나갔던

그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을 말이죠.

꿈에서 그녀는 매일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면 목아 아프죠.


그녀의 꿈에는 어머니 영애 씨와 동생 미주도 등장합니다.

물론 그녀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건 사실이지요.

어떤 이유일까요?






심리분석



엄마가 어색하다고? 딸이? 그럴 수 있나? 보통 엄마와 딸은 친밀하지 않나? (미수와 영애 씨 사이가 무척 가까웠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러나. 문제가 있나. 엄마에게 이런 감정을 갖는 게 맞나? 그래서 지수는 더 수다스러워졌다. (대화가 많은 관계는 정상적이니까.) 그래. 그건 일종의 회피였다. 문제를 모른 척하기. 그래서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굴기. 지수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덮었다. 영애 씨를 향한 그 마음이 없는 척했다. pp. 29-30




주인공 지수의 가정에서 미수와 엄마 영애 씨는 무척 친밀합니다. 그러나 어쩐지 그 사이에서 지수는 소외감을 느낍니다. 엄마 영애 씨와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지수는 영애 씨 앞에 서면 더 말을 많이 합니다. 꾸역꾸역 할 말을 찾아냅니다. 그러다 보면 지치죠.


반동형성: 수용할 수 없는 충동을 반대로 행동하는 방어기제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사고가 바르지 않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어색하게 반대되는 행동을 합니다.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할 때 그 사람 흉을 보거나, 좋아해야 하는 사람이 미울 때 유독 더 친절하게 굴지요.

자녀는 부모를 미워하면 안 된다는 죄책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서운한 점도 있고, 미운 점도 있죠. 그 자연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색하게 진심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곤욕으로 느껴지죠. 다행히 소설의 마지막에 지수는 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로 합니다.


지수는 가족을 사랑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정한 건데) 그들을 진심으로 미워했다. 지수는 이 마음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p.114










영애 씨는 살아남은 식물들에게만 애정을 품었다! 시들어가는 화분에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저건 쟤 운명이야. 어쩔 수 없어." 올리브 나무 뒤쪽, 영애 씨가 숨겨놓은 작은 화분 하나가 보였다. 시들다 못해 누렇게 말라비틀어져 있는 제라늄. p. 32







어린 시절부터 지수는 소극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네를 타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며 높이 올라가기를 포기했죠. 그러나 동생 미주는 달랐습니다. 겁 없이 높이 올랐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미주가 떨어질까 걱정하지 않고 기특한 눈으로 바라봤죠. 지수는 늘 미주와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애정을 빼앗기고 주눅 들기 시작했습니다.

영애 씨는 화분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화분에 같은 애정을 주진 않았죠. 알아서 쑥쑥 잘 자라는 화분은 더욱 사랑해 주는 한편, 시들어가는 화분에는 관심을 버렸습니다. 그것이 그 화분의 운명인 것처럼 말입니다. 알아서 잘 자라는 화분과 시들어가는 화분, 그것이 상징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미주와 지수 아니었을까요?


아들러의 출생순위: 출생순위에 따른 양육방식이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


아들러의 출생순위 이론에 따르면, 첫째는 둘째가 나오기 전에 왕위에 오른 것처럼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생긴 후 '폐위된 왕'이 되죠. 왕으로 군림하며 살았기 때문에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고, 질투는 생기나 성숙하게 대처하거나, 눈치껏 사랑을 되찾아오는 법을 모릅니다.

반면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경쟁상대가 있기 때문에 눈치가 빠른 편이 됩니다. 첫째와 경쟁하기보다 첫째와 다른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어 사랑을 받는 법을 깨우치죠.

소설 속 지수와 미주의 관계가 딱 이렇습니다. 뭐든 척척 잘해내는 미주와 그걸 보고 비교당하고 상처받는 지수. 물론 모든 출생순위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이런 영향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영애 씨는 지수가 그네를 탈 때마다 언제나 생각했다. 너는 나보다는 더 높이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지수는 항상 그네에서 너무나도 쉽게 내려왔고, 영애 씨와 똑같은 목소리로 못 하겠다고 울먹거렸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영애 씨는 착각을 했던 걸까. p.99




그네에서 용기 내지 못하는 지수를 보며 엄마 영애 씨는 이렇게 바랍니다. 네가 나보다는 높이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그 기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지수는 해내지 못하죠. 영애 씨는 못마땅해합니다. 대신 이를 해낸 미주를 보며 영애 씨는 마음에 만족감을 얻습니다. 자연히 두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이 달라지지요.


투사: 자신의 무의식적 소망/욕망을 타인에게서 찾아내는 것


영애 씨의 못마땅함은 누구를 향함이었을까요? 겁쟁이 딸이었을까요, 높이 올라가지 못한 자신이었을까요? 이루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을 자녀에게 돌리며 위안을 받은 건 아닐까요? 그래서 자기와 다른, 그네에 높이 오르는 미주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던 건 아닐까요?

지수는, 자녀는 누군가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못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 먼저 살아보며 느끼게 된 어떤 일에 대한 필요성,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녀를 한 사람, 한 인격, 한 인생으로 존중해 주지 않으면 가정은 무너집니다.







지수는 심호흡을 하며 가슴에 힘을 줬다. 그동안 중량을 늘릴 때마다 늘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걸 할 수 있을까? 그때마다 영민씨는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랬다. (지수를 향한 영민 씨의 예언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지수는 자꾸만 운동에 욕심을 내게 됐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p.101





더 좋은 사람을 만드는 건 꾸중과 질책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잘 해낼 수 있다는 신뢰와 응원, 그리고 그 응원을 받아 아주 작은 시도에 도전해보는 용기.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를 향한 긍정적 예언은 결코 기대에서 멈추지 않고 반드시 이뤄집니다. 영민 씨의 예언처럼 말이죠.



소설의 제목 <풀업>은 등 근육을 키우는 운동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근육과 닮아있다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는데요. 운동 중 가장 최상위 난이도의 풀업까지 도전하게 되는 동안 지수의 마음도 단련됩니다. 아직 완전해지긴 멀었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요. 지수의 성숙을 응원하며 오늘 <풀업> 한 번 읽어보시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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