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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제주 Nov 20. 2018

접짝뼈국 들어 봔? <장흥식당>

민박집 주인장이 알려주는 구석구석 제주 이야기 (16)


때는 2년 전 어느 날이었다. 여행객 신분으로 J와 제주에 놀러 왔을 때였는데 왜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둘이서 술을 그렇게 먹었을 리는 없고 당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하고 마셨던가 - 내가 미쳤지. 아주 다음날 아침에 죽겠는 거라. 출근하던 버릇 때문에 눈은 일찍 떠졌지, 숙취 때문에 속은 불편해 죽겠지, 게스트하우스 조식으로는 토스트 샌드위치가 기다리고 있는 판이니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침대에 모로 누워 마을 해장국집 여기저기에 영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고는,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던가, 24시간 해장국집을 찾아냈다.


거지꼴을 하고 식당에 들어앉은 우리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둘 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이름도 생소한 접짝뼈국을, J는 몸국을 주문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그리 멍청할 수가 없었던 거라. 접짝뼈국도, 몸국도 돼지 국물을 베이스로 눅진하고 진하게 끓여내는 것이니 해장에는 꽝이었던 거지. 그렇게 둘 다 국물만 뜨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다가 나온 기억이 접짝뼈국과의 첫 만남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문득, 접쩍뼈국을 다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만난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보다 깊고 진한 매력의 음식이어서, 순간 난 접짝뼈국과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관심이 생기면 공부부터 하는 스타일인 나는 여느 때처럼 접짝뼈국을 글로 배우기 시작했다.


좀 늦었지만 (우리) 접짝뼈국을 소개하자면 '접짝뼈'라는 것은 정확한 정의가 불분명하지만 통설로는 돼지 머리와 갈비뼈 사이 - 범위가 제법 너그럽다 - 의 뼈 부위를 접짝뼈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며, 실제 접짝뼈국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뼈다귀 해장국처럼 등뼈 부위를 사용하기도 하고, 마구리뼈, 잡뼈 등등 다양한 부위를 사용하고 있다. 부위는 대충 그즈음이라고 치고, 그 돼지뼈와 무를 뭉근하게 한참을 고아 낸 이를테면 돼지 사골 국인 셈인데 지역에 따라 메밀가루를 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장흥식당>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식당이 아닐뿐더러 장흥식당의 접짝뼈국이 그것의 전형이니 꼭 가서 맛 볼 모범적인 맛입니다!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두루두루 추천할 만한 곳이라 생각되어 슬며시 소개해 본다.


외관을 보면 꽤나 오래된 듯한 모양새여서 '어, 이거 어쩌면 대단한 맛집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외부에 갈치구이, 고등어조림, 전복뚝배기 등 이것저것 마구 나붙어 있는 폼새가 영 수상한 것이 아니다. 엉거주춤 궁둥이를 뒤로 한참을 빼고 문을 드르륵 여니 사장님이 티브이를 보며 마늘을 손질하고 계신다. 혼자인 데다 오후 세시 반에 식당 문을 여는 것은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닌데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반겨주셔서 한 구석에 슬쩍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좀 젠체하고 싶은 마음에 좀 먹어본 양 '뼈국 하나 주세요'라고 주문을 하고 가게를 둘러보니 세상에 흑돼지 구이까지 하는 집이라니, 나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건가 의심이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초조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평소에 보지도 않던 드라마에 눈을 두고 있자니 오래되지 않아 밥상이 나온다.



커다란 양은 쟁반에 찬과 국을 한꺼번에 담아 통째로 내주시는데 생각보다 반찬이 많다. 제주도 로컬 음식점에서 흔히 반찬으로 내는 늙은 호박 조림, 고사리나물, 슴슴하게 된장에 무친 표고버섯과 번행초 나물(처음 보는 나물이라 나중에 이름을 따로 여쭤봤다), 제법 살이 들은 박하지 게장에 풀치(갈치의 새끼) 튀김까지 세 토막이나 내어주시니 이런 인심이 또 없다. 김치와 오징어 젓갈이 너무 평범한 맛인 것은 눈감고 두 번도 넘어갈 수 있는 완전 제주도 밥상이다.



장흥식당의 접짝뼈국은 메밀가루를 풀지 않은 스타일로 돼지뼈와 무로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 있는데 제철의 단 맛이 오른 무와 함께 뭉근하게 끓여내 국물 맛이 묵직하고 깊이 있기가 이를 데 없다. 사발을 뒤적이니 커다란 뻐가 세 덩어리가 나오는데 살이 또 어찌나 많이 붙었는지 이 가격에 나 완전 횡재했네 생각이 들 정도. 고기만 뜯어먹어도 어느 정도 배가 찰 정도인데 워낙 오래 고아낸 국물이다 보니 국물에 고기 조각들이 녹아들어 있어서 국물까지 꼭 다 챙겨 먹어야 접짝뼈국을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있겠다. 워낙에 진한 국물이다 보니 좀 부담스럽다 싶을 때는 같이 나오는 다진 청양고추를 좀 넣어 깔끔함과 칼칼함을 더하는 것도 좋겠다.


신나게 한 그릇을 비웠는데 사장님이 다시 드라마에 푹 빠지셨는지 주인공들을 그렇게도 안타까워 하고 계신다. 보던 드라마가 아닌데도 이것이 마지막화인 것을 알겠어서 조용히 밥상을 물리고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어서는데 동네에 있는 가게였다면 단골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올게요. 그 때까지 (우리) 접짝뼈국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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