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시골 민박집 주인장의 일상 이야기 (04)
해안도로를 달리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폼을 잡는 것 같아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확실히 겨울이 되어 가니 해지는 시간이 빨라진다. 삽시간에 어두워진 하늘에 유난히 구름이 선명하고, 그 뒤로 또 커다랗고 둥근달이 환하기 그지 없다. 어느새 달이 저렇게 가득 찼나 싶은 생각에 오래간만에 달력을 보니 음력 15일이다. 지난 보름달이 뜰 때에는 부모님이 제주도에 오셔서 함께 였었는데 또 다음 보름달이 왔구나, 벌써.
제주에 내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날짜와 요일을 모르는 삶이 찾아오고 말았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 대부분에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인데, 날짜가 흘러가는 것은 오로지 오일장 날짜와 일주일에 한 번 마을에 나타나는 순대 트럭이 오는 날로 날짜와 요일을 가늠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다.
회사에 다닐 때면 수요일은 가정의 날, 목요일이면 주간업무를 챙기고, 금요일 오후면 주간 임원회의가 열리고 월말이면 월말 결산 업무들을 해야 하는 등 요일과 날짜를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부질없더라.
해가 점점 짧아지는 걸 보니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오늘은 유난히 바닷물이 가득 들어차는 걸 보니 대조기인가 보네, 하루 종일 바람이 잔잔하더니 오늘 밤에는 고깃배가 많이 나갔구나, 달이 저렇게 새끼손톱만큼 살짝 올라와 있는 걸 보니 음력 3일 정도 되었으려나, 오늘은 달이 작고 구름도 없는 걸 보니 별이 많이 보이겠네, 그런 날이라면 따뜻하게 챙겨 입고 별 보러 나가야지.
네, 오늘도 그렇게 달력보다 달을, 시계보다 바다를 더 자주 보는 제주도에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만은 마세요.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따박따박 찍히는 월급 내역을 보는 삶도 나쁘지 않답니다. 진짜라니까요. 그러니까 다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