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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제주 Oct 31. 2018

인스타그램이 제주를 어떻게 망치고 있는가

맛스타그램은 맛집이 아닌 시대에 대한 단상


"별로였지?"

"어, 한 모금 마시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였다니까. 진짜 별로였어."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좋은 매일이다. 어떻게든 집 밖에 있으려고는 하나 매번 비슷비슷한 곳만 가는 것이 지겨워 새로 생긴 식당이나 카페를 부지런히 검색해 다니려고 하는 편인데 최근 들어 유난히 방문 이후 만족스러웠던 적을 손에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아니, 카페면 기본적으로 커피는 맛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기가 막히게 맛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기본은 해야지. 기본은."

"요새는 맛보다 비주얼이 중요한 시대라잖아. 인스타빨. 어차피 관광객들 한 번 가고 다시 안 갈 사람들이고 그냥 인스타그램에 예쁜 사진 하나 올리면 끝인 거지. 거기에 맛이 있네 없네 쓰지는 않잖아."

"하긴, 요즘은 인기 있는 집이라고 가 보면 맛은 진짜 하나도 없는데 왜 장사가 잘 되는지는 알겠는 집들이 많지."

"오늘도 또 속았네. 또."






생각해보면 그렇다.


시절이 변한 것이다. 개인 SNS가 블로그에서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바뀌는 동안 말은 줄고 사진은 늘어났다. 블로그가 성행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자, 예전의 맛집 블로그를 예로 들어보자. 일단 건물 외관 사진에서부터 가게 내부, 메뉴판 사진, 그리고 메뉴 하나하나의 사진에 덧붙여 본인의 의견이 어떤 형태로든 한 두줄이라도 곁들여졌고, 이 '의견'이라는 부분이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는지, 사진의 퀄리티가 어떤지에 따라 인기 블로거가 가려지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선을 끄는 화려한 메뉴 사진, 특징 있는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 한 컷, 그리고 #맛스타그램 #JMT 이러면 그냥 끝나는 것.


그리고 검색 엔진이 검색 포털에서 인스타그램, 유튜브로 바뀌어가며 '비주얼'이 점점 중요해지다 못해 전부인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예쁜 사진 한 장을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추가하면 그뿐, 맛이 있다 없다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최근 유명세를 얻고 있는 대부분의 카페나 식당을 찾아가 보면 '맛'이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것이 사실이고, 대부분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제주도의 경우는 그러한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 번 오는 관광객'이 '예쁜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맛이나 음식의 기본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은 예전처럼 입소문도 블로거들의 상세한 리뷰도 아닌 '예쁜 사진 한 장'이니 말이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젊은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얼마나 존재할 것이며, 언젠가는 '맛'이라는 것을 아예 알지 못하는 세대가 와 버리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걱정이 든다. 그렇게 점점 카페도 식당들도 기본적인 맛이나 재료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없어지고 특이하고 예쁜 비주얼의 메뉴와 사진빨 잘 받는 포토존 인테리어에만 고심하며 결국엔 본질도, 진정성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티브이를 틀면 두 채널 건너 한 번씩은 맛집, 먹방 프로그램이 나오고, 먹방 유튜버가 수백만 구독자를 갖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에는 #맛스타그램 #먹스타그램에 수백만 개의 게시물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지만 진짜 맛집은 점점 사라져가는 것에 슬슬 조바심이 드는 것이 그저 트렌드에서 멀어져 가는 중장년의 노파심이기만을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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