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어떤 희망을 가지고 상담을 결정하게 되셨나요?
내가 내담자와의 첫 만남에 종종 하는 질문이다. 요즘에는 상담 관련 방송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선입견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심리상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본인의 의지로, 대담자가 상담소를 찾아올 경우에는 대게 ‘나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온다. 때문에 ‘희망’에 대한 질문은 내담자가 다다르고 싶어 하는 최종적 목적지, 목표를 설정하는 첫걸음이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이해, 그리고 해소, 해결도 목표에 해당된다.
상담에 꼭 목표가 있어야 하나요?
아주 가끔 내담자에게 이런 질문을 들을 때가 있는데, 반. 드. 시. 있어야 한다. 상담치료는 하소연을 하는 시간이 아니다. 물론 하소연도 나름의 치료효과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심리적 스트레스에서 일시적으로 해소하거나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기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은 ‘치료’에 목적을 두고 있는 전문적 서비스이지 유료 친구 서비스가 아니다.
만약 내담자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해서’ 상담소를 찾아왔다면, 상담사는 문제를 찾기보다는 그 궁금증을 가지게 된 원인에 대해서 알아보려 할 것이다. 상담사는 가전제품 A/S기사와 비슷하다. 가전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지지, 일부러 문제를 찾아서 고치려 하거나 집안은 아무런 목적 없이 둘러보지 않는다. 만약 그런다면 어서 112에 신고.
난 상담 세션을 GPS에 비유한다. 내담자가 다다르고 싶어 하는 목표가 있고, 그것이 도착지라면, 상담 세션은 지도와 GPS라고 할 수 있겠다. 목적지가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GPS아 정확한 지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다.
‘우울감 (또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음주가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어서’, ‘배우자와의 잦은 다툼 때문에’… 우리가 상담소를 찾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그렇다면 불안하지 않고, 술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자와 다툼이 줄고, 그 대신에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은지를 상상한다면, 내가 진정 원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서서 이야기한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해서’라는 호기심이 있다면, 그 호기심이 풀렸을 때 궁금증이 풀렸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해결중심 단기치료의 창시자 김인수 (Insoo Kim Berg) 선생님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문제’에는 해결 요소를 같이 지니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문제에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지 구체적인 요소, 목적지를 발견하는 작업이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원인을 덮어둔 채 소홀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만 바라보며 나 스스로를 꾸짖고 있다면, 내가 어떤 모습을 띄고 싶은지, 그리고 그 모습을 띈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만약 그 모습이 너무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낙심부터 하기 전에 조금 여유 있게 목적지에 한걸음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본다면, 그 작은 변화가 더 큰 동기부여로 작용할지 모른다.
우리에게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면 애써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집을 나서더라도, 금세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리고는 지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울지도 모른다. 아 몰라! 다 귀찮아! 버스는 몇 번을 타야 하는지, 지하철 역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방법을 찾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려는 종착역이 어디인지부터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