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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의 문제점

생각

by 김재열
연희동에 있는 '바늘이야기'

아내는 뜨개질을 좋아한다. 지난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도 뜨개질 용품 파는 곳을 가서 구경을 했을 정도니까 (역시 한국은 뭘 해도 참 이쁘게 잘 만든다). 가끔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유튜브를 보면서 하는 것을 보면 '요즘은 참 뭘 배우기가 참 쉽구나' 생각이 든다. 동시에 아내는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본인 뜨개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비교로 인한 자괴감을 표현할 때도 종종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다가 자기가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할 의욕이 확 떨어진다면서 말이다.


나는 기타를 친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제법 칠 줄 안다. 나 왕년에는 좀 쳤어. 고등학교 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패기 하나만 가지고 일렉 기타를 사서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연습했다. 먼지만 쌓이던 기타가 안타까워 레슨을 받고 첫 코드를 연습하기까지 반년이 걸렸다. 교보문고에서 기타 교재를 사 와서는 하루 종일 방에 앉아 기타 연습을 했던 때가 생각나는데, 그때 유튜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때 유튜브를 보면서 휘황찬란하게 연주하는 동갑내기 친구들을 보면 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나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 외모나 삶의 질을 평가할 때 타인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위기의식이 된다. 그리고 그 건설적인 비교는 나 자신을 조금 더 떠밀려는 ’ 라이벌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경쟁이 붙으면 스스로가 더 빠르게 발전한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다. 먼 과거에 뒤쳐짐이란 생명의 위협과 곧바로 연결될 수 있는 사항이었으니까.


만약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전부 다 나보다 월등하게 무언가를 잘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그냥 '내가 못났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을까? 위기의식은 어느 정도까지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그 차이가 어느 이상 커지면, 오히려 포기하게 된다. 나 자신이 초라하게 보일지도,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마치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처럼.


‘나는 잘하는 게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잘’의 기준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잘’이 남보다 잘한다 못한다인가? 아니면 내가 느끼기에 현재의 노력에 만족스럽게 ‘잘‘ 한다는 의미인가? 만약 전자라면, 내가 잘하는 것은 언제든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넓고 당신보다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곧, 내 자아 가치감은 마치 고무줄 널 뛰듯 들쭉날쭉 해 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과정에 대한 성취감보다는 결과를 보기 때문이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만 바라본다면, 나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타인과 비교하게 된다. 요즘처럼 인터넷에 재능충들이 잔뜩 있는 세상에, 이런 식으로 있다가는 살아남기 힘들다. 어후 힘들어서 어떻게 사니.


그렇다면 과정에 대한 성취감은 어떻게 얻을까? 내가 생각하는 '성취감을 조금 더 쉽게 잘 느끼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목표의 재설정: 무언가를 '잘' 하고 싶다는 욕심 있다면 '잘한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기타를 잘 치고 싶다면, 내가 생각하는 잘 치는 사람이란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토대로 로드맵을 만들어서 차례차례 스텝을 밟아가야 한다.


(2) 마음 내면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귀 기울이기: 무기력하거나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는, 내 마음속에서 어떤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 고민해 보자. 나를 방해하는 생각을 인식하고 다루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3) 기록하는 습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목표는 무엇인지, 매번 어떤 점을 연습하고 느꼈는지를 짧게라도 기록해 보자. 이런 기록은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는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성취감을 느끼는 데도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매일 운동한 시간, 기타 연습한 내용, 만든 뜨개질 작품, 공부한 내용 등을 간단하게 남겨보자.




과정에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는 일을 금방 포기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아주 정확하게 보안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비디오/모바일 게임이다. 휴대폰에서 쉽사리 접하는 게임들을 보면 살짝 어렵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정도로 계속 자극을 주고, 그리고 그 성취감을 극대화시켜 계속 폰을 잡고 있게 만든다. 게임 오버가 떠도 '한 번만 더', '조금만 더'라고 말하며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일상에서 해야 할 일들을 게임처럼 느끼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나 앱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과정에서 성취감을 얻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맥락은 같은 것 같다.


목표가 크다면 당연히 들어가는 시간도 크다. 그리고 익숙한 게 아닌 이상 목표까지의 거리가 장거리가 될수록 지치기 쉽다. 혹시 나는 짧은 시간에 불가능한 목표를 원하는 건 아닐까? 도둑놈 심보 만약 노력하는 시간을 무작정 늘려가면서 나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다면 그건 본인에 대한 자각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게 '잘한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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