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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Dec 21. 2022

영원히 낡아지지 않는 마음

 나는 자주 이미 낡아버린 사물들을 보며 그것이 가장 새것이었을 시절을 떠올린다. 오늘도 어느 건물 아래에 있는 이미 녹이 슬어버린 휴지걸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낡아진 것을 보면 괜히 코끝이 찡하며 고연히 따갑고 뜨거운 눈물을 한 방울 흘리고야 마는 그런 청승맞은 인간 부류이다. 너의 가장 새것이었을 시절은 언제일까 떠올려본다. 지반이 단단히 다져지고 나서 세워진,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교회가 딸려있는 상가 건물 안에 새로 지어진 화장실, 그 속에 가장 유행이던 옥색으로 만들어진 새 휴지걸이. 수백, 어쩌면 수천 명의 사람의 손길이 닿아 지금의 상태가 되었겠지. 이제는 만지기도 괜스레 찝찝한, 모두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기만을 기다리는 쓸모 없어져 버린 상태. 나는 그런 게 슬프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이 한 음절의 차이로 바뀌어버리는 존재들의 가치. 그럼 늙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시간의 흐름이라는 크나큰 저항을 맞으며 우리는 무력하게 낡아지는 걸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미지의 우주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 약한 피부와 뼈를 가졌기 때문에, 태어났어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엉켜버린 실뭉치를 하나하나 풀어가듯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의문이 없이 죽음이라는 출구에 다다르는 것이라고. 허나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에 하나의 응어리가 진다. 시간이 흐르면 늙어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데,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새것이던 시절은 언제인 걸까. 눈을 깜빡이고 침을 흘리기만 해도 사랑받던 신생아 시절인가, 저금통에서 동전을 훔쳐 불량식품이나 사 먹던 초등학생 시절인가, 아니면 일탈을 일삼던 중학생 시절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 말하는 20대의 청춘 시절일까. 흔히 사람들은 20대를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들 말한다. 허나 나는 이 말에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20대의 젊음과 생기, 용기와 패기를 부러워하듯 나도 그들의 안정과 여유가 부러웠다. 자고로 생을 즐길 줄 모르는 보수적인 20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다. 그저 이 청춘을 모두 갈아 넣어 연료로 쓰고 어디로 가는 지 알 길이 없는, 궁금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단단한 도로를 깔아야 하는 것. 적어도 나에게 이 청춘은 생으로부터 부여받은 과업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자살해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모든 것에 이토록 열심인 걸까. 왜 죽은 뒤에는 기억도 하지 못할 영화를 보는 것에 일생의 절반을 허비하고, 죽을 만큼 아프다면서 또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이해받기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릴까. 그래 인간에게는 모두 고유한 자아가 있다. 나는 여태껏 그것을 잃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가끔 눈물을 흘리고,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고, 죽고 싶다 말하면서 아직까지 이 끈질긴 생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내 육신 안에도 미지근한 자아가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매일이 청춘이면 우리는 그것을 부러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겠지, 추억의 음식을 십수 년 만에 다시 먹었을 때 늘 실망을 하는 것처럼 이미 지나간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그만큼 아름답게 기억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허세 같은 냉소 따위는 집어치우고 과업 같은 청춘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며 천천히 늙어갈 것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이 청춘을 그리워하고 싶다.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따라서 새것과 낡은 것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인간은 그저 쓰고 버려지는 한낱 소모품이 아니기 때문에. 시인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농축되고 정제된 은유를 할 수 있게 되고, 소설가의 세계는 팽창하고, 요리사는 노련해진다.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 대체 불가능하다. 태어난 이상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나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군가는 나로 인해 인생의 일부분을 허비하며 조금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나는 내일 오늘보다 조금 더 늙어가겠지, 허나 영원히 낡아지지 않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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