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발라드를 듣는다.
이별해 울고 있다. 서른 두 살에 이게 무슨 짓이람. 이상하게 언젠가부터 이별이 쉽지 않다. 마음이 약해진 탓이겠지. 스무 살의 첫 번째 이별 말고는 다 잘 이겨냈고, 이겨낼 거란 믿음이 있었는데 요즘은 쉽지 않다. “이별에 울고 웃고 매달리는 애들/뻔한 발라드 왜 듣나 했는데/술에 취해 새벽에 전화하는 애들/하나도 이해 못했는데.”(빅나티, ‘뻔한 발라드’) <이소라의 프로포즈> 같은 영상을 찾아보고, 미련 뚝뚝 떨어지는 문자를 하루 하나씩 보내고 있다. 오십이 넘어서도 이별에 울고 있을까 봐 조금 걱정된다. 친구들은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이별에 울고불고 하다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가 않아 아무거나 잡은 게 책 <외로운 도시>였고, 저자 올리비아 랭이 헨리 다거라는 소설가 겸 미술작가의 작업을 탐구하는 부분을 읽었다. 자신이 보고 겪은 폭력성을 콜라주와 같은 작업으로 표현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폭력을 목도하게끔 하는 그림과 글들. 내게도 예술이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다르다. 기형도처럼 “사랑을 잃고” 쓸 수가 없다. 사랑을 잃으면 ‘얼음!’ 상태가 된다. 이별의 아픔을 글로 그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능력이 내게 있다면. 다들 어떻게 이별을 이겨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이 동강난 것 같고 내게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온 몸을 지배하는 이 기간을.
반면 사랑에 빠졌을 때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사랑했을 때 보았던 것들에 대해 써보겠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자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행복감 같은 그런 뻔한 거. 잠든 그 사람의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들 때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너무 좋아 유포리아를 느끼는 순간 같은 그런 뻔한 거. 밤 11시에 만날 약속을 하고 어둠 속의 걸음걸이로 그 사람을 느낄 때 같은 그런 순간들. 아침에 먹으라고 고구마나 직접 만든 볶음밥을 손수 싸줄 때 사랑받는 느낌. 로맨틱하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꽃이 가득한 길을 같이 걸었고 강가를 오래도록 걸어 아주 오래도록 노래해온 가수의 무대를 함께 보았다. 여러 번 애교 공격을 해서 얻어낸 삼 초간의 뽀뽀, 거의 그루밍하듯 그 얼굴에 뽀뽀해대던 순간, 친구들에게 나를 애인이라 소개하고 손 꼭 잡고 집에 가던 날, 같이 작은 다치노미에 방문해 배 터지게 먹고 마시고 낄낄거리며 가게를 나오는 순간, 매일 만나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인사하는 손길. 수염이 싫었지만 수염이 멋있어 보이는 순간, 머리숱이 없어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대체 뭘까? 냉면을 먹고 입에 고춧가루 잔뜩 낀 채로 킬킬거려도, 노상방뇨를 해도 밉지는 않은 이유는?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냥 하루종일 그 얼굴을 바라보고 싶다. 순간순간 바뀌는 표정들 모두 놓치지 않고. 나는 또다시 발터 벤야민을 들고 올 수밖에 없는데, 그건 그가 사랑의 진부한 속성에 대해서 너무나 아름답고 적확한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아름다움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오래, 더욱더 사정없이 붙잡는 것은 얼굴의 주름살, 기미, 낡은 옷, 그리고 기울어진 걸음걸이다. 감정이 머릿속이 아니라 그것들을 본 장소에 깃들어있다는 학설이 맞는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을 벗어난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긴장과 환희를 느낀다. 감정은 애인의 광채에 눈이 부셔서 새떼처럼 푸드득거린다. 그리고 잎으로 가려진 나무의 우묵한 곳에 은신처를 찾는 새처럼 감정은 사랑하는 육체의 그늘진 주름살, 투박한 몸짓,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결점을 찾아 그 안에 숨어 들어가 안전하게 은신처 안에서 몸을 움츠린다.”
감정 덩어리와 살덩어리를 분간할 수 없이 모두가 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그 강렬한 순간에, 그 소요의 시간에 우리를 감싸던 공기. 타고 남은 감정.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나는 그에게 파고든다. 돌아누운 그 넓은 등이 애처로워 보이기 시작하면 때가 온 것이다. 내 감정은 이미 나를 벗어났다. 그 감정을 회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아니, 그 감정은 영원히 거기 깃들지도 모른다. 그의 약점에 내 감정들이 깃들어 있다면 나는 그가 그대로 거기 머물렀으면 좋겠다.
사람이 늙어간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렇게 다행스러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