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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므 레터 Nov 19. 2023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내 심장의 색깔은 글리터.

방금 바른 네일, 스팽글 스커트, 눈물 고인 눈동자, 글리터 섀도, 윤슬, 유리 문진, 은 목걸이, 원석 반지, 한낮의 와인잔, 꽃잎에 머무른 아침이슬, 비즈 팔찌, 실크 란제리, 조개껍질의 안쪽… 내가 아는 반짝거리는 것들 것 목록. 이렇게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손 끝에 햇빛이 산산이 바스러지는 듯, 입 안에 톡톡 튀는 막대사탕을 넣은 듯, 심장을 글리터로 가득 채운 듯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긴 글리터 네일팁을 붙인 손가락으로 비즈가 잔뜩 들어간 슬라임을 주무르는 안온한 느낌. 나는 반짝거리는 것에 환장한다.


“강약 주는 법을 잘 몰라.” 내 옷차림을 본 어느 잡지사 선배의 말이었다. 뭐든 톡톡 튀는 아이템만 고르다 보니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허무해도 반짝이는 게 좋아요.” 어느 늦은 밤 홍콩 길거리에서 내가 일행에게 한 말이었다. 일행은 말없이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지금 생각하니 녹아내리는 고철처럼 마음이 오글오글하다. 500년 지나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 주얼리처럼, 그 생각은 내 마음 한 구석에 온전히 남아있다.


어느 저녁 한강에서 따뜻하게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금보다 은을 더 좋아하지만, 왜 가장 값비싼 건 금인지 알 것 같았다. 금빛으로 빛나는 강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잃었다. 세상과 내가 잠시 분리되는 느낌 말이다. 나와, 내 앞에 온통 금빛 강물만이 있었다. 오늘은 킨츠기 수업의 마지막 순서에서 금가루로 옻칠한 부분을 덮을 때 미열 같은 희열을 느꼈다.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황홀경이었다. 완성한 그릇을 손에 들고 조심조심 걸어 집에 들어왔다.


버리면 쓰레기가 될 것들. 해가 지면 사라질 것들. 왜 반짝이는 것들은 허무할까? 나는 왜 순간의 반짝임에 사로잡히는 걸까? 언제나 어디에서나 나는 튀고 싶었다. 버스 바닥에 잘못 떨어진 스팽글 한 조각처럼, TPO라는 것을 모르고 튀고만 싶어 했다. 아니, 이걸 과거형으로 쓰는 건 잘못이다. 하지만 현재형으로 문장을 쓴다면 그마저 너무 튈 것 같아, 실은 내게 어울리는 건 조금 색 바랜 은 같은 문장, 무광의 은반지 같은 것. 이건 30대가 되어 한 생각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나는 큰 코르사주가 달린 모자와 드레스 세트를 입고 등교했다. 카멜색이었지만 나는 무리에서 아주 튀었을 것이다. 늘 옷을 좋아했던 할머니 작품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광장시장을 손바닥 안처럼 헤집고 다니던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귀도 뚫고 온갖 주얼리로 장식해주고 싶어 했다. 엄마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나는 할머니의 장롱에서 가끔 은색 같은 매니큐어를 가져오곤 했다. 할머니는 흔쾌히 주었다. “우리 예린이는 커서 미스코리아 하면 좋겠다.” 할머니의 눈동자와 금을 씌운 아랫니가 함께 빛났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유전이다. 엄마를 건너뛰어 내게 온 할머니의 유전자. 눈을 한 번 깜박이듯, 무언가 한 번 반짝! 하듯 엄마를 건너뛰어 내게서 또 빛나게 된 유전자다. 할머니는 할머니답게 옷을 잘 입었다. 언제나 화려하지만 조화로운 옷차림이었다.


지금은 요양원에서 가끔 할머니를 본다.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우리를 노려본다. '왜 이렇게 또 오랜만에 왔어'라고 말하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할머니가 가끔은 답답하지만, 이제는 미움이나 원망이라는 감정이 여전히 그 안에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새 머플러를 몸에 둘러줘도 할머니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럴 때는 조금, 사람에게서 생기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슬프다. 몸이 푸석푸석해지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삶에서 생기가 빠지면 그때 사람이 푸석푸석해지는 것이다. 점점 삶의 반짝임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 아니 반짝이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것을 생각한다, 욕망. 나는 반짝이는 것을 욕망한다. 삶에 생기가 부족하다는 증거일까? 몸에 피가 부족하면 염분을 찾듯이, 생의 진액이 빠져나가는 만큼 인위적인 반짝임을 한없이 오랫동안 내 안에 가둬두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할머니와 할머니가 남긴 주얼리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짐한다. 어떻게든 반짝임을 간직해야만 한다. 반짝거리자. 반짝거리자. 남은 생애 동안 나는 기를 쓰고 반짝이리라. 더 이상 반짝이지 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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