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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ul 10. 2023

어디나 똑같은 엄마의 잔소리

Lecturing Children

  오래전 서랍에 넣었던 글이네요.

            

 신문 한 귀퉁이에 일주일에 한 번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의 글 <채서영의 별별영어>가 실린다. 잘못 쓰는 영어라든지 영어에 얽힌 색다른 문화를 알려주는 코너다. 잘 모르는 것도 쉽게 소개되어 꼭 읽는다.


잔소리에 관한 이야기. 더블린 공항 복도에는 빨랫줄각종 티셔츠가 걸려 는 그림이 있다고 한다. 티셔츠 위에는 부모들이 자주 하는 잔소리가 쓰여 있단다.


 기사를 읽으니 문득 그려보고 싶었다. 다이어리에 가로로 선을  긋고 여섯 개의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다. 청바지,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양말 모양 아기 배낭, 수건, 반바지, 플레어스커트를 그리고 빨래집게로 접어 바람에 날리게 하고 거기에 잔소리를 옮겨 적었다.


청바지에는 "꼭 너 같은 애를 낳아 키우기 바라."

I hope someday you have children just like you.


이런 말을 나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딸이 음식을 가려 먹고 잘 먹지 않을 때마다 나는 속이 상했다. 아들처럼 주는 대로 음식을 잘 먹으면 좋으련만 딸은 음식을 먹지 않고 기도만 드렸다. 왜 그러는지 잘 알아보고 아이와 차분하게 대화를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 바빴으니까.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아이들이 먹다 남은 것을 서서 대충 모아 몇 숟갈 떠먹고 출근해야 했으니까. 시간은 없고 먹지 않는 아이에게 못된 소리를 해대었다. 나중에 너 닮은 아이 낳아서 먹지 않을 때 그러면 엄마 마음 알 거라고 화를 내곤 했다.  (요즘 엄마들은 그러지 않기를...) 캡슐 약을 먹일 때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곤 했다. 목안 근육이 예민하면 음식물이 잘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걸 진작 알았더라면. 정말 아이에게 미안했다.

 

블라우스에는 "돈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아니?"를 쓴다.

Do you think that money grows on trees?


이것은 아들에게 해당된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돈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돈문제를 말하지 않으리라 했는데 얼마나 지켰는지는 모르겠다. 돈이 없는 게 부모 탓이지 아이들 탓은 아니니까. 어린 아들은 은행에 가서 돈을 사 오라고 했다. 물건 사듯이 돈도 은행에 가 사 오는 것으로 알았던 거다.


아기 배낭에는 "잘못했다고 해!"

Say you’re sorry!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 아이들을 키우면서 훈육이 아니라 야단만 쳤던 것 같다. 엄마의 권위로 잘못했다고 인정하라고 아이들에게 강요했을 것이다.


수건에 쓴 말은 "방이 꼭 돼지우리 같아!"

Look at your room! It looks like a pigsty!


이 말은 정말 많이 썼다.

“이게 뭐니? 이게 사람 사는 방이니? 너 나중에 네 아이들이 이렇게 어질러 봐. 좋을 거다.”

아마 저 말을 많이 해서 내 입이 조금 닳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 가르친 이유도 있었다. 아이들이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하는데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고 내가 다 해버리고는 그런 기회를 빼앗아버린 적이 많아서다. 아들은 목욕할 때 꼭 옷을 벗어 욕실 앞에 놓았다. 치우라고 하면 나중에 치운다고 짜증을 냈다. 딸은 침대 위건 책상 위건 정신없이 어질렀다. 치우지도 못하게 했다. 자기 나름의 질서가 있는데 달라지는 것이 싫다는 거였다.


퇴근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 방까지 어질러진 것을 보면 정말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잠깐씩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도 좋았으련만 미련하게 나는 그 돈이 아까웠다. 그거면 아이들 책 몇 권은 더 사 줄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 아이들이 없을 때 가끔 정리를 해 놓곤 했다. 그것을 보고 닮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니었다. 또 완전하게 흩어 놓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렇게 어지러운 방을 전혀 불편하거나 지저분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귀찮아서 안 한 건지도. 이건 엄마 집이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혼하고 자신들의 공간이 생기자 마법처럼 고쳐졌다. 절대 달라질 것 같지 않더니 저들의 공간이 생기자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물건은 제자리에 반듯하게 놓고 말끔하게 해 놓고 산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너무 많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다 고쳐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엄마들이여, 돼지우리라고 야단치지 마시길. 그냥 돼지우리로 살게 두시길. 보기가 괴로우면 문을 닫아버리시길. 잔소리가 나오려면 저 빨랫줄을 생각해서 비에 젖은 말을 말리고 뽀송한 말로 하는 건 어떨지.


반바지에는 "뭘 몰라, 어떻게 그렇게 이해를 하지 못하니?"

What part of no don’t you understand?

(아니라고 했는데 뭘 이해 못 해). 이것도 자주 했던 말이다.


마지막으로 치마에는 "내가 네 나이 땐 잼 바른 빵 하나만 생겨도 행운이었지."

When I was your age, I was lucky if I got a jam sandwich.


이 말은 우리와 다른 문화적인 잔소리다. 잔소리에도 문화가 따라온다. 이 잔소리는 남편이 많이 했다.

“내가 너네들만 했을 때는 돈이 어디 있냐, 고생 고생하면서 자랐지. 너희는 복 받은 거야.”

 

     



세계 어디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은 거의 비슷한가 보다. 지역과 문화가 달라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는 행동은 비슷하고, 부모들의 잔소리가 공통적인 것이 신기하고 재미나기도 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어떤 잔소리를 했나 생각해 보았다. 어김없이 정리하지 않는 것부터 나무랐다.

“방 꼬라지가 이게 뭐니?”

아이들 키우면서 참고 또 참고 고상하고 차분한 말로 설득하고 다독이면 오죽 좋으련만 학교서와 집에서는 달랐다.


어떤 때는 아무거나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복이려니 하다가도 아들이 게임하는 것이 진짜 싫었다. 책을 읽어라든지 공부 좀 해라 같은 잔소리는 덜 했을지 몰라도 밤낮없이 게임하는 것을 보면 속이 부글거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게임하는 아들에게 심한 말을 해놓고도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공부해야 하는데 게임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거다. 아들은 물론 그 말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잔소리로 넘겼겠지만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아들을 조금도 이해하려고 하지 못했다. 내 말이 아들의 가슴을 긁어대었을 생각을 하니 정말 미안하다.


“도대체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니?”

몇 번이나 말해도 소용없다. 하나마나한 말이다. 엄마의 말은 잔소리에 불과하니까. 한 마디만 딱 하고 그 말이 뼈를 때리는 말이어야 하는데 엄마들의 말에는 그런 힘이 없다.


“누굴 닮아 그러니?”

누굴 닮아 그러다니. 당연히 저들의 부모인 나나 남편 닮았겠지. 그들이 나온 껍데기 닮았겠지. 그걸 왜 아이들에게 탓한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태어나게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자라면서 엄마에게 들었던 가장 싫었던 잔소리를 나도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그 말 싫었는데. 아이들도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아이들이 그런 잔소리들을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했던 말들을 써 보니 정말 나는 한심한 엄마였다. 교육학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음에도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나 심한 말을 했다니! 잘 키우노라 최선을 다했노라고 스스로 자부하곤 했던 나였다.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사랑하는 말도 많이 했겠지만 돌아보니 참 못난 엄마다.


 잔소리는 정말 쓸데없는 말이고 그저 자신의 화풀이로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했던 모든 잔소리들은 잔소리로서 수명을 끝내고 더 이상 아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지 않았기를 바란다.

(엄마들이여, 잔소리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 주세요~)

내가 했던 말들을 써 놓고 보니 아무리 잔소리지만 정말 부끄럽고 부끄럽다. 그런 잔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잘 자라준 딸아, 아들아, 고맙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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