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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un 11. 2023

아름다운 노년

영화 <나부야, 나부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삼신봉 자락 600미터에 자리한 단천마을에 사는 김순규 할머니와 이종수 할아버지. 그들을 찍은 영화 <나부야, 나부야>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그들의 7년 동안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큐의 특성상 오랜 시간을 찍어야 하기에 감독의 지난한 인내가 필요하다.


처음에 < 나무야, 나무야>로 잘못 읽고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같은, 두 노인이 정원을 가꾸는 이야기로 짐작했다. ‘나부’는 나비의 경상도 사투리다. 결혼한 지 78년이나 된 노부부의 이야기로 91세인 할머니와 92세인 할아버지가 사는 모습을 찍은 영화다. 그들은 열일곱 살과 열여덟 살에 만나 6남매를 키우고 50년 넘게 이 마을에 살았다.


나부야 나부야 포스터 출처:다음


 풀이 무성한 빈 집으로 할아버지가 돌아온다. 딸은 엄마가 없는 집에 혼자 계시겠다는 아버지가 안타깝다. 이도 없는 옴폭한 얼굴, 거동도 불편한 모습으로 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물끄러미 본다. 늘 할머니와 함께 했던 공간은 이제 빈 공기만 남아 있다. 할아버지는 함께 했던 할머니 생각으로 가득하다.



두 분이 살던 집 출처:다음

아침이면 할머니와 당신의 요강을 비우고 수돗물로 씻는다. 집 앞에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보리가 익어가고 소나기가 오고 푸른 산천이 흘러가고. 눈발이 날리면 온 산하가 하얗다. 눈이 오니 좋다고 웃는 할머니 웃음이 곱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참 고왔을 것 같다. 할아버지도 말하는 것을 잘알아들을 수 없지만 젊은 시절에는 장대하고 훤칠했을 것 같다.


패어놓은 장작이 집 옆 벽에 두둑하게 쌓여 있다. 흙바닥 부엌에 할아버지가 장작을 땐다. 할머니가 춥지 않게 부채질을 해가며 불을 땐다. 어느 날은 집 뒤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나뭇가지를 주워 녹슨 낫으로  나뭇가지를 깎는다. 끝을 뾰족하게 하고 다듬어 작은 비녀를 만든다. 무거워 잘 빠지는 옥비녀 대신 가벼운 나무 비녀를 머리에 끼우며 할머니는 “욕밨소, 애썼소, 이삐요.” 한다. 언제나 그렇다. 영감, 하고 부르고 영감의 존재를 확인하고 무슨 일이든 애썼소 욕밨소 한다. 고맙다고 늘 감사한다. 그러는 할머니 웃음이 어린아이처럼 맑다.


할아버지가 하동 장에 지팡이를 짚고 간다.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옷집에 가서 할머니 속옷을 산다. 버선도 사고 붕어빵을 사고 집으로 온다. 할머니는 속옷을 사 왔느냐며 환하게 웃는다. 둘은 색이 다른 버선을 신은 발을 뻗고 앉아 붕어빵을 먹는다. 서로에게 더 먹으라고 권한다. 나는 그만 눈물이 차오른다.


그저 일어나 밥을 먹고 몇 마디하고 마루에 나와 앉아 계절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그렇게 세월과 함께 흘러간다. 그 나이에 할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특별히 일어나는 일도 없고 그저 같은 날들이 흘러갈 뿐이다.


눈발이 날리는 날, 동네에서 김장을 하고 가져온다. 마당에 널었던 명태 두 마리를 잘라 김치를 썰고 두부를 넣어 방 안에서 브로스타로 음식을 끓여 먹는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 옷을 빨아주고 추운데 나오지 말라고 한다. 다 쓴 가스통은 청마루에 나란히 세웠다가 낫으로 구멍을 내어 버린다.


화면은 느리게 흐른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춘 것이다. 할아버지가 낮잠을 자는 사이, 할머니는 겨우 일어나 막대기를 짚고 천천히 위험스레 마당으로 가서 바지랑대를 눕히고 빨래 하나를 걷어 또 위태위태 마루로 돌아온다. 지팡이를 짚은 다리가 무너질까 조바심으로 본다. 무려 그 장면이 5분이 넘는다. 실제 할머니가 움직이는 시간. 막대기로 신발을 끌어당겨 신는 할아버지. 할머니 발톱을 잘라준다. 과자 봉지를 잘라서 할머니에게 준다. 할아버지는 명심보감을 읽어준다. 할머니는 어느새 졸고 있다.


느린 세월도 무심하게 흐르고 할머니 눈이 풀려 있다. 머리도 빗지 못하였으나 자글자글한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다. 볕이 좋은 청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다. 잘 듣지 못하니 할아버지가 하는 말에 동문서답을 한다.


“봄이 좋아, 가슬이 좋아?”

"응?"

"봄이 좋아, 가슬이 좋아?"


다섯 번을 물으면서도 똑 같은 어조로 말한다. 끝내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계절을 듣지 못한다.  어쩐지 이 대화는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보통 부부들은 두 번째 세 번째에 신경질을 내고 노년의 부부싸움 원인이 잘 알아듣지 못해 생긴다고 한다. 눈사람을 만들어 할머니에게 준 적이 있는 할아버지가 눈사람을 만들어 마당에 세운다. 영화를 위한 유일한 콘셉트라고 한다. 수돗가에 꽁꽁 언 수도에 얼음이 길게 늘어져 있다. 인생의 겨울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유난히 겨울 풍경이 많다.



할머니 머리를 빗겨주시는 할아버지 출처:다음


할아버지는 젊어서는 그냥 그랬는데 나이가 들수록 정이 더 두터워진다는 말을 한다.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 화면이 구름으로 사라지고... 하얗게 뭉쳐 있던 구름은 실오라기가 풀어지듯 하늘에 풀어진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마당에 호박잎을 본다. 호박잎에 호랑나비가 앉았다 날아간다. 나비는 영혼이 환생한 것이라던데, 할머니가 평소에 나부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청마루에서 졸듯이 눈을 깜박거린다.   




30년을 각방 썼는데  이 영화를 보고 방을 합쳤다는  60대 독자의 말을 듣고 최정우 감독은 영화를 찍은 보람을 말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화면 속이 두 어르신을 보면서 처음에는 부모님이 떠올랐으나 점점 우리 부부로 시선을 이동하게 된다. 아프지 말고 오래 둘이서 세상을 살다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죽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기도 하다.


검색하다가 임지호 셰프가 김순규 할머니를 위한 108가지 요리를 했다는 글을 읽었다. 지리산에서 만난 할머니를 10년이나 어머니로 모셨다고 한다. 밥으로 맺어진 정 <밥정>. 방랑식객 임지호를 10년에 걸쳐 찍은 영화를 이어서 본다.


포스터 출처:다음영화


임지호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고 다른 여자의 아이, 지호를 얻었다. 세 살 때 엄마가 자신을 본가에 주고 돌아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어렸을 때 주워온 자식이라는 수군거림을 듣고 싸우기도 한다.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쁜 행동도 많이 했다. 학교가 끝나면 저수지에 가서 하루 종일 앉았다 어두워지면 오곤 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이 오자  결국 가출을 한다. 배가 고파 어느 식당에서 밥을 훔쳐 먹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우는 엄마를 본다.


“길러준 엄마가 우는 걸 보고 왜 낳은 자식도 아닌데 그러느냐고 했더니, 낳아야만 자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키운 자식도 자식이라는 말을 듣고 그때 어머님의 사랑을 느꼈죠.”


“키워 준 그 눈물을 생각하면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죽도록 일했어요. 돈을 주거나 말거나 온몸이 부서져라 일했어요. 그 눈물 값을 해야 합니다.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찾아 온 산하를 헤매고 다닌 걸까. 그리움이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밥을 해 주었다. 지리산에서 김순규 할머니를 만나 밥을 해 주고 10년 동안 이어진다. 할머니가 89세 때라 걷기도 하고 집 앞에 나와 냉이도 캔다. 그를 보는 다정한 웃음이 언제나 이어진다. 모과를 써는 그를 보면서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한다.

“칼질도 잘하네.”

“토란국도 맛있어.”


출처: 다음영화

어느 날 셰프는 할머니가 바지랑대에 빨래집게를 집다가 넘어졌는데 일어나지 못했고 그 길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는다. 비 오는 담벼락에 서서 그는 무너지는 마음이 된다.


그는 낳아준 어머니, 길러준 어머니, 그리고 길에서 만난 어머니  분을 위해 108가지 음식을 만들어 위로하기로 한다.  산하에 음식 재료를 찾아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온갖 종류의 떡과 음식을 꼬박 이틀에 걸려 상을 완성한다. 메와 탕을 마지막으로 놓고 숟가락을 그릇에 꼽고  오는 평상에 엎드려 임지호 셰프가 간곡한 절을 올린다. 목이 가득하여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무엇이 올라온다.



108가지 음식을 준비하는 임지호 출처:다음영화



영화 두 편을 보고 나니 인생이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고 서로가 해야 할 역할이 줄어도 부부라는 관계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는 걸 생각한다. 서로 따스하게 대하고 존중하면 될 것이다.  하루하루 소박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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