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름다웠던 때
살아가면서 인생길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스스로의 의지든 아니면 불가피하게든.
일본 근대 작가 하야시 후미코의 글에 <나의 스무 살>이라는 글에는 "정신세계는 미숙하고 걸핏하면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며... 책을 많이 읽고 지드에 취해 살았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스무 살에 무엇이 될까 무엇을 할까 따위는 없었고 인생에 대해 아무런 신념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그림에는 관심이 많아 전시에 냈으나 번번이 낙선하고 만다. 어느 날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여행을 간다. 그 일로 <방랑기>를 써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 글 인세로 혼자 1년 동안 유럽 여행을 간다. 그 기록이 <삼등 여행기>이다. 1930년대에 대단한 여성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작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나의 스무 살은 어땠을까.
교대를 졸업하고 갓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스무 살은 6학년 아이들과 열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천방지축 좀 큰 어린이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친절하고 엄격한 선생’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친절함과 엄격함이 양립하기가 참 어려웠다. 친절하면 다정한 쪽으로 추가 기울어 엄격해지기 어렵고, 엄격하면 딱딱해지는 쪽으로 기울어 친절해지기 어려웠다.
후미코처럼 일기도 쓰고 교단 일기도 쓰고 책도 읽었지만 쉽게 여행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글쓰기에는 관심이 있어서 동시를 써서 아이를 시켜 학교 앞 우체국에 가서 부치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좋은 동시를 많이 읽거나 꾸준히 시를 쓰고 공부한 것도 아니라서 당연히 누군가의 눈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 일기를 모아 책으로 묶어 낼 수나 있으려나, 하는 마음이 내 작은 소망이었다.
그 시절,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다가 학교에서 물러난 그 이후의 삶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30년 넘게 학교에 있다가 나오면 나는 이미 청춘을 다 살았고 그저 늙은이로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스무 살에는 오륙십이 된 모습을 상상하지 못할 나이이니까. 삼사십 년 후에 내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그려지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밀고 나가는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정말 알지 못했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새내기 교사 2년 차에 나는 스물두 살.(당시 교대는 2년제였다.) 6학년을 담당하고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선배 언니 교실에 가서 가위질을 하며 환경정리 물품과 학습도구를 만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둑어둑할 때면 퇴근했다. 날마다 가리방을 철필로 긁어 등사를 했다.(그때는 그렇게 유인물을 만들었다.) 잉크가 묻은 롤러를 밀어내며 한 장 한 장 내 글씨가 쓰인 시험지가 등사가 되는 것을 보며 비로소 선생이 된 것을 인식했다.
주말에는 우리 집에 놀러 온 아이들과 용머리 같은 데로 놀러 가서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다. 소풍 가면 우리 반만 구석진 곳에 숨어들어 신나는 팝송을 틀어놓고 모두 어울려 춤을 추고 놀았다. 멀리 높은 바위 위에서 교무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고 계셨다. 누가 학생이고 선생인지 모르는 철없는 어린 선생이었다.
선생님들은 병아리 선생인 나를 아주 예뻐해 주었다. 아버지뻘 되는 선생님도 있었고 심지어 은사님도 계셨다. 모두 칭찬과 격려로 응원해 주었다. 선배는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동료 교사로서 존중해 주었다. 하는 일마다 엉터리고 부족함 투성이지만 교장 교감 선생님이나 선배 선생님들은 신참인 교사를 인정해 주고 가르쳐주고 응원해 주었다. 나는 좋은 동료들을 좋은 아이들을 좋은 학부형을 만난 것이었다.
정신세계는 미숙하고 자주 눈물도 흘렸으나, 겁도 없이, 내가 가르치는 어린이들이 전부인 시절이었다. 온통 머릿속에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그런 생각들로 들어찼다. 세월이 흐르고 교육현장을 살아내면서 풍화작용으로 닳아지고 차츰 쪼그라들기도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지금 어디선가는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두려움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선생님들이 생을 포기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한 교사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어리디어린 2년 차 새내기 교사였다. 학부모로부터 괴롭힘 앞에 목숨까지 내놓고 말았다. 슬픔을 안고 영원히 떠나버린 어린 선생님. 방학 전이라 아이들은 학교에 오갈 때마다 조화가 깔린 길을 지나가야만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누구에게도 다 펼쳐놓지 못하고 혼자 문제를 싸안고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어린 선생 시절로 돌아가 마치 내가 그 상황을 겪는 것처럼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미안하고 애통했다. 슬픔과 비통한 마음으로 온 나라 선생님들은 거리로 나와 진상규명과 교권 보호를 외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선생이 될까 자나 깨나 생각하는 그런 시절이 교사 2년 차 시절이다. 뭐든 잘 해낼 자신이 넘치고 의욕으로 충만한 때다. 세상이 아름답고 희망으로 가득 찬 시절이다. 새내기 교사들은 누구나 그렇다. 그 꿈을 펼치지 못한 한 사람이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 그 일로 세상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교사가 행복해야 된다. 그래야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교사들이 편안해야 우리 아이들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교육을 할 수 있다. 진정 교사들이 마음 편하게 소신껏 가르칠 수 있도록 학교가, 이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교사들의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선생님들이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