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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un 30. 2024

어쨌든 씁니다

나를 나아가게 하는 글쓰기

          

  4년 동안 이어진 글 쓰는 아침, 뭐래도 쓰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한동안 어디를 다녀오면 루틴이 깨져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그만큼이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노트북을 열고 무엇을 쓸까 생각하다가 장강명이 말한 '쓰는 사람'의 정의가 떠오른다.


“곰팡이가 심오한 의도 없이 기하학적 패턴으로 균사를 만들어내듯이 작가들은 ‘의미 기계’로서 책을 토해내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럴지도. 균사가 번져나가듯이 작가들은 의미를 포자로 퍼트리며 글쓰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쨌든 쓰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김연수의 말을 강하게 부정한다. 글쓰기가 자신을 긍정하는 행위인지 잘 모르겠고, 또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 사람을 낫게 만드는 지도 의문이라고 말하며 그런 논리라면 자기 합리화를 잘할수록 더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겠냐고 반박한다. (출처: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또 사람들은 읽는 글로부터 영향을 받기에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아름다운 인간이 된다는 말에도 태클을 건다. 글을 읽으며 영향을 받는 것은 맞지만, 아름다운 글을 읽으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다. 히틀러는 만 6천 권을 보유하고 하루에 500쪽을 읽는 독서광이었다든지, 죽는 순간까지 다양한 책을 읽어낸 마오쩌둥도 그렇고 스탈린도 독서광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역사에 피비린내 나는 날들을 가져온 그들이 엄청난 독서가였다는 사실을 예로 든다.


 장강명은 더 나가 ‘읽고 쓰면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실제로는 편리한 면죄부로 쓰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까지 번진다. “힘들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읽고 쓴다는 쉽고 재미있는 일만으로 자신이 좋은 인간이 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런 허약한 가설에 기대 은근한 우월감을 즐기는 듯 비칠 때에 좀 딱해 보였다.” 고 하는데... 그렇게까지야. 읽고 쓰는 일을 면피용으로 이용하는 도구처럼 말하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그렇더라도 나는 김연수의 쓰는 행위에 강하게 긍정한다. 당연히 나는 남의 좋은 글을 읽으며 영향을 받고 자극을 받는다. 글을 쓰며 나는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심히 건너갈 수 있는 일도 마음을 쓰게 되고 그것이 쓰기의 영향이라고 믿고 있다. 날마다 쓰는 일이 나를 더 나아가게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믿음은 변함없지만 장강명의 말은 그 너머를 생각하게 만든다.

 

 왜 쓰는지 왜 읽는지 그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읽고 쓰며 '왜 자는가'에 대한 질문과 같다며 아무리 즐거운 날들이 이어져도 읽거나 쓰지 않으면 허무해진다고 장강명은 말한다. 쓰지 않으면 못 견디기에 쓰는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진짜 작가가 아닐까.

  


 내 안에 일어나는 무수한 생각들을 흘려보내기도 하지만 그중에 어떤 것을 붙들어 활자로 드러내는 일이 좋다. 바느질이나 수를 놓는 일처럼 글이 돋아나 모니터에 조금씩 박음질이 되어가면서 한 편의 글이 되어갈 때 나는 즐겁다. 그 글이 반짝이는 생각이나 기억될 문장으로 새겨지는 것이 아니어도 한 땀씩 촘촘하게 이어지는 그 순간이 좋다. "읽고 쓴다는 쉽고 재미있는 일만으로 자신이 좋은 인간이 되고 있다고 믿고 싶은 허약한 가설에 기대는" 사람일 망정.


 글을 쓰는 동안, 가까운 언저리에 일어난 일이나 생각을 끌어온다. 언저리의 한계는 어제이거나 아침이 될 때까지의 시간에 해당한다. 어제 이전은 이미 다른 글에 박힌 바늘땀이기에 그 이후의 시간이 글의 재료가 된다. 그러니 날마다 나는 관찰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가져와야 한다.


 읽기는 내게 또 쓸거리를 가져온다. 남의 생각을 읽으며 내 생각을 키워본다. 책을 통해 배우고 공감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항상 의문을 가지고 읽으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다.  


 굼뜬 바느질 같은 쓰기일지언정 어느 순간 수놓아져 무언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가 닿아 따스한 무늬가 되었으면, 누군가에게 가 닿아 가슴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한 순간이 되었으면, 누군가에게 가 닿아 자꾸 만져지는 문장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쓴다. 더디지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쓰는 동안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힘듦도 기꺼이 견디게 한다.

오늘도 그런 생각으로

어쨋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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