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설자 Oct 14. 2024

다만 너무 멀리 나갔다 왔을 뿐이야

노인과 바다

               

 오랜 세월 <노인과 바다>를 손에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완벽하게 집중하여 끝까지 읽은 적은  별로 없으나 언제나 꼼꼼하게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이탈로 칼비노가 말한 고전의 의미처럼.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누구나 읽었으나 아무도 안 읽은 책.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해 살라오 신세가 되기 직전인 산티아고는 드디어 배보다도 큰 청새치를 잡는다. 돌아오는 동안 상어들의 공격을 받고 배에는 청새치 머리와 꼬리 뼈대만 매달고 항구로 돌아온다. 누구나 아는 이 소설의 전체 이야기다.


 낚시를 문 청새치가 요동을 칠 때마다 어깨를 감아 맨손 위에 얹어진 팽팽한 줄이 빠르게 풀려나갈 때 살을 파고드는 쓰라린 아픔이 다가왔다. 별이 쏟아지는 밤 추운 공기 속에 낚싯줄을 잡고 어디론가 끌려가며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 그. 먹지도 자지도 못한 상태에서도 몇 번이고 힘을 그러모아 버티는 목마름을 견디는 산티아고 옆에 선 나는 미안하게도 계속 물을 마신다.      

“인간에게 패배란 있을 수 없어… 인간이라면 파괴를 당할지언정 그에게 패배란 있을 수 없지… 희망을 잃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죄악이지.”


 아마 이런 부분들 때문에 학생들의 필독서로 지정된 건 아닐까. 어떠한 좌절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인생의 달고 쓴맛을 살아보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그 작품의 깊은 삶의 통찰을 읽어낼 수 있을까. 나 역시 학생때는 다만 지루하고 재미없을 뿐이었다.


 쿠바에 갔을 때 헤밍웨이 흔적을 따라다녔다. 그가 나들었던 암보스 문도스 호텔과 플로리디타 카페에서는 그가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도 마셨다. 전망 좋은 농장이라는 의미의 ‘핑카 비히하’는 말 그대로 전망이 끝내줬다. 그의 서재를 그대로 보존해 놓아 글 쓰다 마실 나간  헤밍웨이를 금방이라도 만날 것만 같았다.


 특히 코히마르 항구가 기억에 남는다. 작은 항구에는 몇몇 젊은이들이 배에서 어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바다는 쪽빛 찬란한 햇살에 부딪쳤다. 아름답고 고요한 바다였다. 저기 저쯤에 마놀로와 함께 커피를 마셨던 테라스가 있었겠지. 그곳에 어부들이 사재를 털어 만들어 세운 헤밍웨이 흉상이 있다. 멕시코만을 향해 언제든 출발할 수 있는 마음으로 멀리 바라보는 그의 표정. 결기에 찬 얼굴이다.  


코히마르 항구



 모든 기력을 잃고 고기도 잃고 앙상한 뼈만 매달고 돌아왔을 때 그는 말한다.


“난 진 게 아니야,

다만 너무 멀리 나갔다 왔을 뿐이야.”


 기진맥진함을 끌고 신문지를 깐 침대에 널브러진 노인을 아이가 발견하는 모습에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집에 있을 수 없어 강가에 나앉았다. 노인과 마놀로가 고기를 잡던 멕시코만은 아니지만 강물 한가운데서 청새치가 어느 순간 치솟아오를 것만 같다.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고 너무 멀리 가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무언가 치이고 나아가기 힘들 때 그 말을 기억하리라.



 완벽한 고립의 바다에서 나흘 동안 청새치와 상어와 사투를 벌이며 인간의 끈질긴 집념,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 인생의 통찰을 모두 갈아 넣은 소설. <노인과 바다>. 작가 스스로도 가장 잘 쓴 작품이라고 했다는데.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쓴 보후밀 흐라발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왔다.“ 고 말했다 한다. 어떤 글을 쓰고 그것 때문에 세상에 왔다고 말할 수 있기를 작가라면 모두 바라지 않을까.


***

우리는 결코 질 수 없습니다.

한강 작가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모두의 영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