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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도 Sep 25. 2021

서대문 근처 돈의문을 아시나요?

배움이 짧아 빈말을 못 배웠어요 6 - 그 무리에 함께 하고 싶을 때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 


노래 '회상'의 가사를 흥얼거리며 4년여 동안 종로와 을지로 근처를 부지런히 홀로 걸어다녔다. 때로 같이 걷는 이들이 있었지만, 부러 홀로 걸은 일도 많았다. 

바람이 찰 때에도, 바람이 시원할 때에도 또는 바람이 없을 때에도 이 노래는 걸을 때 흥얼거리기 참 좋다. 최근에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 정경호가 불러 다시 인기를 모은 이 노래는 장범준의 목소리로 드라마 '시그널' OST로도 몇 년 전 들어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곡 자체가 '동반자' 느낌을 주는 덕에 곡의 생명이 긴 것이 아닌가 하고 문득 생각한다. 

원곡은 1982년에 산울림이 불렀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울림의 맏형인 김창완과 '김창완과 꾸러기' 멤버로 활동한 뒤 이 곡을 리메이크한 임지훈의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라디오 일을 할 때, 한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나와 그가 방송 전 연습 삼아 기타 치며 불러준 이 곡의 라이브는 혼자 듣기 아까울 정도로 좋았다. 

사설이 길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우연히 마주한 곳과 그 공간을 빛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습관적으로 매일 1~2만보를 걷던 시절, 서대문역 근처 강북삼성병원에 새로이 문을 연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우연히 들렀다. 시험으로 중, 고등학교를 가던 시대에 명문고들이 인근에 모여 있어 과외방이 유명세를 떨치다가 고등학교들이 이전하자 근처 직장인들의 맛집 동네로 분위기를 바꾸며 살아 남은 서울의 오래된 마을이 7080의 추억을 자극하는 박물관으로 재탄생되었다. 

옛날 극장, 오락실, 만화방, 가정집 등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에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모여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만화방에서 만화를 읽고 옛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잡플래닛으로 이직한 뒤 그 공간의 매력을 새롭게 느꼈다. 서울시에서 행사, 공연 관련 회사와 협업하며 그 장소를 소개하며 투어를 진행하는 배우들을 마을의 주민 역할로 투입한 것. 

'예체능 전공자들의 직장 생활'을 다루는 인터뷰를 고민하다가 이들을 떠올렸고 이들과의 인터뷰를 잡았다. 연기 또는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한 배우들은 진심으로 그곳의 주민으로 살면서 그 마을에 살면서 과외를 하고 식당을 했던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직장 고민과 고충을 나누면서 진짜 그 장소에 사는 이들처럼 일하고 퇴근 이후의 삶을 꾸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정말 드물게 그 공간이나 무리에 일원으로 함께 하고 싶은 '진심'이 생길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돈의문박물관마을이라는 공간에 담고 있는 진심과 열정이 읽혀서 빈말이 아닌 진담으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타인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인터뷰를 위해 처음 가는 회사,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 친화력을 선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이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만들기는 제법 어렵다. 
그 어려움이 언젠가 조금 덜 어려워질 수 있게 나도 열정을 조금 더 더해야 한다.

(왼쪽부터) 돈의문박물관마을 플레이 도슨트 이새별(이꽃분 역), 선민지(MC 민지, 선도부장 역), 이준호(서대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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