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댓바람부터 산책

21.07.20(화)

by 어깨아빠

아침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영상 통화였다. 아내는 밖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 이른 시간에.


“여보. 뭐해?”

“나 산책 나왔어”

“진짜? 이 시간에? 대단하다”

“그치? 덥네”

“낮에는 더워서?”

“어, 차라리 지금 나오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낮에는 더우니 아침에 나왔지만 아침에도 덥긴 마찬가지다. 아침 댓바람부터 30도에 육박하는 날씨다. 그 시간에 애들을 챙겨서 산책을 나오다니. 이런 게 다 아내의 사소한 아니 사소한 게 아니지. 대단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통화를 끝내고 시간이 좀 지나서 산책은 무사히 마쳤는지 물어봤다. 산책길에 지렁이가 너무 많이 나와서 소윤이가 좀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마치고 돌아왔다고 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잘 지냈는지 궁금했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가끔 통화를 할 때 아내 목소리의 높낮이와 무게감 등을 고려해 분석한 결과, 어제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내 스스로도 잘 지내고 있다고 했고.


아내가 서윤이 사진도 보내줬는데 주방 바닥에 엎드려 잠든 사진이었다. 서윤이는 이럴 때가 종종 있다. 자꾸 집안에서 노숙을 한다. 너도 나름대로 고단한 하루를 사는구나.


퇴근 시간 이후에만 할 수 있는 업무가 있어서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빠르게 집에 왔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남편이 없을 때는 그 어떤 초인종에도 문을 열지 말라는 나의 말을 잘 듣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아내를 놀라게 하려고. 아내는 의심 없이 문을 열었고 난 문 뒤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다. 아내는 온 복도에 울리도록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많이 놀랐겠지만 그걸 충분히 상쇄시킬 만한 게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남편의 이른 퇴근’.


아내와 시윤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너무 궁금했다. 일단 아내를 보니 어제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보. 오늘은 잘 지냈어?”

“어, 괜찮았어”

“어제처럼 위기도 없었고?”

“어, 오늘도 좋았어”


임상 시험 2일차. 역시나 스킨십의 힘은 위대하다는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내가 아직 저녁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인 시간이었다. 아내는 가지밥과 두부조림을 하려고 했다.


“여보. 내가 저녁 할게. 여보는 좀 쉬어”

“아니야. 괜찮아. 여보가 좀 쉬어”

“아이 괜찮다니까. 얼른 좀 쉬어”

“여보 이따 할 거 준비해야지”

“준비할 거 없어. 나한테 가지밥 레시피만 말해주고 여보는 소파에 좀 앉아 있어”


아내가 알려준 대로 가지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부조림은 그냥 내 마음대로. 아내의 유일한 주문은 서윤이도 먹을 수 있도록 ‘최대한 덜 짜게’ 해달라는 거였다. 아내가 소파에 앉자마자 삼 남매가 달려들었다. 아내한테 매달리고 안기고, 무릎 위에 앉고.


“여보. 나 쉬는 거 맞지?”


사실 쉬는 것도 좋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애들이랑 보낼 시간을 더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쉬는 건 이미 물 건너 간 듯했지만 아이들과의 시간은 반강제로 확보가 됐다. 몸으로 받아주는 게 힘에 부쳤는지 아내는 아이들에게 책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엄청 호기롭게.


“읽고 싶은 책 가지고 와. 엄마가 읽어줄게”


아내는 최선을 다해 책 한 권을 읽어주고는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아, 얘들아 엄마 너무 피곤하네”


그 광경이 너무 재밌었다. 시윤이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아빠. 엄마가 왜 책 읽다가 갑자기 자여?”

“그러게 시윤아. 엄마가 오늘도 많이 피곤하신가 보다”


아내는 꽤 한참 정신을 잃었다가 깼다. 아내가 잠든 사이에 저녁 준비가 거의 마무리됐다.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급히 먹고 먼저 일어났다. 난 일을 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밥을 마저 먹고 잘 준비를 했다.


아내가 소윤이를 씻기면서 물어봤다고 했다.


“소윤아. 소윤이는 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아빠가 일찍 온 게 너무 좋았어여”


이 맛에 자식 키우지.


애들을 모두 재우고 나온 아내와 오늘의 후기(?)를 좀 더 자세히 나눴다. 어제보다 한층 더 깊은 확신과 자신감을 얻은 듯했다. ‘고작 이틀밖에 안 됐지만’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오늘도 아내의 포옹과 뽀뽀 세례가 시윤이의 마음을 더 녹인 건 분명했다. 훈육할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아내 말처럼 고작 이틀밖에 안 됐지만, 어쩌면 이번 한 주가 아내와 나의 자녀 양육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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