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 위한 갖은 노력

22.03.11(금)

by 어깨아빠

두부와 당근, 애호박, 버섯, 고기 등의 재료를 작게 썰어서 볶은 음식 사진을 받았다. 물론 아내가 보낸 거였다. 점심에는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다고 했는데 계란물에 야채를 넣어서 굽고 양상추까지 잔뜩 넣어서, 파는 토스트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다른 사진도 받았다. 각자 오늘 하루 노력해야 할 일을 적은 종이였다.


소윤 : 동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시윤 : 누나 말 잘 듣기 / 서윤이 거 뺏지 않기 / 엄마 말씀 잘 듣기

엄마 : 화 내지 않기 / 많이 안아 주기

서윤 : 언니 오빠 하는 거 뺏지 않고 친절하게 부탁하기 / 짜증 많이 내지 않기

-오늘 하루 더 사랑하기-


아내가 하루를 ‘잘’ 살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들어 준 영양 가득한 각종 야채 및 고기볶음과 이삭 토스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고급 토스트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각자의 반성이자 다짐을 담은 선언(?)에 응원을 보탰다.


“다들 잘 지키길!”

“응 부디”


소윤이는 요즘 피아노를 무척 치고 싶어 한다. 배우고 싶다는 말도 많이 한다. 제대로 된 배움을 위한 인고의 과정까지 즐겁게 소화해 낼지는 해 봐야 알겠지만, 그간 엄마와 홈스쿨을 하며 쌓은 공력이 있으니 잘 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매일 유아용 장난감 피아노를 붙잡고 이런저런 동요를 단음으로 치곤한다. 꿩 대신 닭도 아니고 꿩 대신 병아리 수준이라 좀 불쌍하긴 하다.


저렴한 디지털 피아노는 당근마켓에도 엄청 많다. 문제는 공간이다. 그걸 사도 집에 마땅히 놓을 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저렴한 디지털 피아노 매물이 엄청 많았다. 그에 비해 신디사이저처럼 생긴 받침 없는 디지털 피아노는 금방 거래되는 듯했다. 사람 생각이 다 똑같은가 보다. 그 와중에 남아 있는 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나에게 피아노 이론 책 링크를 보냈다. 어떤 의미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아내는 친구가 자녀들을 그 책으로 공부를 시켰다면서, 아쉬운 대로 먼저 공부라도 시켜 보는 게 어떠냐는 뜻으로 그 책을 보여 준 거였다. 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악기도 없이 책으로만 공부하면 더 괴로운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나를 기준으로 보면 그랬다. 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 할 거다. 의외로 소윤이는 즐거워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의 사고 세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 아내의 제안을 반려했다.


우리 집에 놀러 왔던 K의 첫째에게 레고를 하나 선물했다. 회사 동료가 준, 꽤 브릭 수가 많고 비싼 레고가 두 개 있었다. 한 번 조립했던 걸 분해한 거라 브릭이 차례대로 구분되어 있지도 않고 브릭 수도 워낙 많아서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저 레고는 언제 해 볼 수 있냐’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갈망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서윤이가 없을 때 날을 잡아서 해야 한다는 핑계로 계속 미뤘었다. 그중에 조금 작은 걸 K의 첫째에게 준 건데 오늘 그걸 완성했다면서 아내에게 사진을 보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조금 미안했다. 물론 우리는 ‘서윤이의 방해’라는 엄청난 장애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금방 끝낼 수 있는 건지는 몰랐다. 우리에게 남은 레고도 빠른 시일 안에 시도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낮에 사무실 청소를 하면서 유통기한은 남았지만 판매는 불가능한 제품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양이 꽤 많았다. 아내는 그걸 수납할 장소를 마련하다가 주방의 수납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덕분에 수납장이 엄청 깨끗해졌다. 신혼 때부터 있던 묵은 물건도 발견이 돼서 싹 다 버렸다.


정리는 아내가 했는데, 왜 이렇게 내가 다 후련하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