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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20. 2024

입덧보다 위험한 졸음

23.09.24(주일)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미뤄둔 주방 정리를 했다. 치열하게 바쁜 주일 아침이었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아서 준비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내는 지난주에 소윤이가 아파서 한 주 교회에 못 갔던 건데 엄청 오랜만에 함께 간 느낌이었다.


아내가 아침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공복이 길면 울렁거림도 심하다고 했다. 예배 드리기 전에 편의점에 가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랠 무언가를 사는 게 어떠냐고 했고 아내는 편의점에 갔다. 반주를 끝내고 아내가 앉은 자리로 와서 보니 ‘사브레’ 과자가 있었다. 이런 쿠키류가 그나마 거북하지 않게 넘어가는 모양이다. 아내의 입덧 방지(?)용으로 산 사브레를, 내가 졸음 방지용으로 더 많이 먹었다. 게다가 맛있기는 또 왜 이렇게 맛있는지.


이번 주는 원래 아내의 여전도회가 식당 봉사를 하는 주간이었다. 보통 하루 전에 와서 식사 준비를 해 놓는데, 아내를 비롯해서 다른 분들도 사정이 있거나 몸이 안 좋아서 가동 인력이 한 명 뿐이었다. 결국 권사님들이 대신 해 주셨다고 했다. 오늘은 그나마 다른 인력이 보충됐지만 아내는 여전히 합류가 어려웠다. 대신 내가 빠르게 밥을 먹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유휴인력이 된 아내를 대신해 설거지를 했다.


아내는 점심을 먹고 유독 속이 더 안 좋다고 했다. 집에서 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며 헛구역질을 하지 못하니 참느라 고생도 했고. 그 정도 상태가 지속되지 않는 걸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견딜 만한 입덧이라 다행이다.


오후예배는 없었다. 대신 오후에 약속이 있었다. Y네 식구를 만나기로 했다. 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지난번에도 거기서 봤다. 많은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좋은 카페였다. 아이들은 조용히 책을 읽고, 어른들은 대화를 나누고. 어른 4명에 아이가 7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정숙하게 책을 읽는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저녁도 함께 먹었다. 중국음식을 먹었는데 ‘너무 많이 시킨 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모두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음식이 조금 남기는 했지만, 대체로 다 먹었다. 그것도 모두 배부르게.


Y네 식구와는 거기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뿌듯했다. 바빴지만 아침에 주방을 치우고 나간 건 정말 잘 한 일이었다. 주방이 아니더라도 집에는 해야 할 일이 천지였지만, 주방만 깨끗해도 삶의 질이 조금은 나아지는 느낌이랄까.


피곤하긴 엄청 피곤했다. 아이들에게 씻으라고 하고 거실에 대자로 누웠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다 씻었으니 서윤이를 씻겨야 했는데 그게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귀찮았다.


“서윤아. 너도 이제 혼자 좀 씻어 봐”


라고 말할 뻔했다. 잘 준비는 모두 끝났는데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교회 사모님과 목사님이 잠깐 집에 들른다고 하셨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보고 싶다는 이유를 대시기는 했지만 아마도 뭔가를 갖다 주시느라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셔서 그동안 난 거실에 누워 쪽잠을 잤다. 애초에 엄청 깊이 잠들지 않아서 거실의 소리를 다 들을 정도였지만, 막상 눈을 뜨니 엄청 개운했다. 잠깐의 쪽잠이 저녁의 몇 시간을 더 확보해 줄 만큼 달콤했다.


피곤할 만한 일상이라고는 해도 너무 피곤하니까 ‘혹시 몸 어딘가 이상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체중계에 올라서면 싹 사라진다.


‘아니네. 또 늘었네. 아프면 이유 없이 몸무게가 준다던데 난 아직 건강한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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