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6(화)
아침에 화장실에 있는데 서윤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오빠아아아아악”
“언니이이이이익”
언니와 오빠에게 어찌나 호통을 치는지. 결국 아침부터 서윤이에게 엄하게 한 마디를 했다.
“서윤아. 너 소리 그만 질러. 언니, 오빠한테 버릇없이 얘기하지 마”
물론 그렇게 말 한 마디에 하루 종일 태도가 바뀌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 육아에서 그런 경험은 거의 없었다. 똑같은 억양과 톤으로 천 번을 말해야 조금씩 바뀐다는 대학시절 교수님의 이야기가 이토록 허구에 가까운 건지 그때는 몰랐다.
어쩌다 보니 하루 종일 아내와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오후 쯤 아내가 메시지를 보낸 게 첫 소통이었다.
“오늘도 참 힘들다”
오늘은 아예 정보도 없고 목소리도 못 들어서 아내가 말하는 ‘힘들다’는 게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이 안 됐다.
“조금만 힘내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여러 의미가 있었다. ‘오늘의 퇴근’이 얼마 안 남았으니 힘을 내라는 의미와 ‘오늘만 지나면 연휴’니 힘을 내라는 뜻이기도 했고.
아내는 어제 미리 공포했다.
“여보. 내일 저녁에는 우리 외식하자. 내일 주방은 점심에 마감하려고”
오랫동안 집을 비우기 전, 최대한 일을 남기지 말자고 했다. 또 내일 엄청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전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이들도 큰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내일을 기다렸다. 퇴근하니 이미 자기들 가방에 짐을 다 싸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서 입을 옷도 스스로 쌌다고 했다. 가방에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인형과 이불, 베개를 꾸깃꾸깃 쑤셔 넣은 게 전부였다. 인형은 한 사람 당 두세 개씩 있었고. 아무리 가벼워도 부피가 커지기도 했고, 내려올 때 놓고 올지도 모르니 인형은 한 사람에 하나씩만 챙기라고 했다. 어제 계획한 대로 저녁은 밖에서 먹고 왔다. 별로 한 게 없어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저녁을 먹고 와서 아이들이 씻는 동안 거실에 대자로 뻗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늘도 서윤이에게 ‘서윤아. 너도 알아서 씻어’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아빠. 저는 혼자 못 씻는데여?”
요즘 언니와 오빠에게 짜증을 많이 내기는 해도, 여전히 서윤이를 보며 마음의 치유를 할 때가 많기는 하다. 아직 전혀 상상이 안 된다. 내년 이맘때는 서윤이가 막내가 아니라니.
아이들은 모두 안방에 누웠다. 어차피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기도 했고, 사실 일찍 출발해야 하니 다 함께 일찍 자려고 했다. 생각한 것보다 해야 할 일이 남아서 다 함께 눕지 못했다. 일단 아이들만 먼저 눕히고 아내와 나도 일을 다 끝내고 안방에 눕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는 그것도 신이 나는 이유였다. ‘다 함께’ 자는 건 언제나 간절히 바라는 일이다.
아내가 낮에 주방을 치워 놓기도 했고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온 덕분에 오랜만에 육아 퇴근 후에 할 일이 없었다. 반대로 아내는 오래간만에 늦은 시간까지 눕지 않고 일(?)을 했다. 짐도 챙기고, 빨래도 개고. 다른 날처럼
“내가 할 테니 그냥 두고 쉬어”
라고 말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아니 할 수는 있지만 완성도가 매우 떨어져서 빼 먹는 게 수두룩 할 게 뻔한 일이라서. 아내는 그것 말고도 자잘한 일들을 처리했다. 매우 오랜만이라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내가 저렇게 부지런히,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날이 다시 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