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가진 아빠의 숙명

19.06.10(월)

by 어깨아빠

아내가 부러웠다. 연휴를 끝낸 첫날, 바로 자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낮 시간에 애들이랑 부대끼는 건 모르겠고, 일단 부러웠다. 어제 축구를 거른 여파로 내내 몸이 근질근질했다. 아내는 낮에 잠깐 애들이랑 카페 다녀오고, 장 본 것 말고는 별 다른 일이나 외출이 없었다.


월요일에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시윤이의 취침 여부, 정확히 말하면 몇 시에 얼마나 잤는가다. 오늘은 12시 50분쯤 잠들어서 1시간 정도 잤다고 했으니 복불복이었다. 희망(?)은 유모차에서 잔 거라 시간 대비 피로도 해소가 좀 덜 됐을 거라는 점.


퇴근했더니 소윤이는 아기 의자에 앉아 있었고, 시윤이는 내려와 있었는데 날 보더니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래?"

"아빠. 어, 시윤이가 밥 먹으려고 앉았다가 기도 안 한다고 고집부려서 엄마가 그럼 밥 못 먹는다고 하면서 내려놨더니 우는 거에여"

"아 그래? 알았어"


"시윤아. 아빠한테 와 볼래?"


하고 팔을 쭉 뻗었더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나에게 와서 안겼다.


"시윤아. 왜 울었어?"

"으아아아아아"

"시윤이가 기도 안 한다고 했어요?"

"으아아. 네. 으아아아"

"기도하기 싫었어?"

"아아앙"

"시윤아. 밥 먹으려면 기도해야지. 아빠랑 같이 기도하고 먹을까?"

"으아아아. 엄마랑"

"엄마랑 기도하고 먹을 거야?"

"네"


시윤이도 다시 의자에 앉아 기도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여보. 가지밥 했는데 여보도 먹을래?"

"그래"


너무 맛있어서 조금만 더 먹으려고 했는데, 양으로 따지면 두 그릇 정도 먹었다.


"소윤이도 맛있지?"

"네. (우걱우걱)"


연출된 동작이 아니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시윤이도.


"여보. 내일은 반찬 없어?"

"어. 내일은 아니야"

"오늘 할 거 많아?"

"많지. 빨래도 널어야 되고. 내일 활동 준비도 해야 되고"

"내일 활동은 뭔데?"

"물고기 모양을 우드락에 붙여서 오려야 돼"

"아. 그렇군"


우드락 커터가 있으면 모를까 칼로 우드락을 자르는 건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대신 밥 먹자마자 일어나서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를 걷고, 세탁이 안의 빨래를 널었다.


"여보가 널어주게? 고마워"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지만, 이가영 남편이 6년이어도 아내의 방식을 온전히 따르는 게 안 된다. 따라 하려는 마음으로 노력은 하되, 결국 내 방식대로 진행되었다. '이걸 굳이 왜 여기다 널었을까?', '이건 왜 이렇게 널었을까?' 하는 의문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하지만 그걸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 '그래도 세탁기 안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의 아내는 이제 이게 거의 가능해졌고, 전국의 모든 아내들도 이래주길 바란다)


저녁 식사가 빨랐는지 다 먹었는데도 6시 30분이었다. 아내는 저녁만 먹고 잽싸게 나갔다. 다행히 오늘은 소윤이, 시윤이 모두 아무렇지 않게 아내를 보내줬다.


"아빠. 우리 조금 더 놀 수 있어여?"

"어. 그럼. 저기 시계가 11에 갈 때까지 놀자"

"그럼 몇 분이에여?"

"15분"

"15분이면 엄청 긴 거에여?"

"엄청 긴 건 아니지만 부지런히 놀면 되지"


잘 놀고 기분 좋게 자러 들어갔다. 시윤이는 눕자마자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더니 날 등진 채 금방 잠들었다.


'오예'


소윤이는 그것보다는 좀 더 걸렸는데, 중간에 내가 자꾸 조니까 날 깨웠다.


"아빠"

"어, 소윤아"

"자면 어떻게 해여"

"너무 졸려서. 그러니까 소윤이가 얼른 자"


그렇게 한 두어 번을 날 깨웠다. 소윤이가 깨우지 않았으면 아마 그대로 잠들었을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직 월요일에는 애들 재우다 잠든 적이 없는데,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오자마자 아까 소파에 막 던져둔 마른빨래를 갰다.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너는 것보다는 개는 걸 더 좋아해서(안 움직여도 되니까) 괜찮았다. 아내의 일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대대적인 정리 후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소파 위가 어지럽혀지는 것도 싫었다.


아내는 헬스하러 갔다가(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가고 있지만, 꽤 열심히 하는 거 같다) 스타필드에 갔다가 동네 카페에 있다가 돌아왔다. 아내는 내일 활동 교구 만들고 난 소파에 앉아서 책 좀 읽으려고 하는데 안방 문이 열렸다. 문만 열고 나오지 않길래 누구인가 가 봤더니 소윤이었다.


"소윤아. 왜?"

"아빠. 엄마는여?"

"어?"

"엄마는여?"

"어. 엄마? 어"


순간 엄청 고민했다. 아직 안 왔다고 할까, 아니면 솔직히 말할까. 지난주에 거짓말했다가 걸린 게 생각나서 오늘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어, 엄마 오셨어. 거실에서 내일 소윤이 처치홈스쿨에서 할 거 만들고 계셔"


소윤이는 거실에 나와서 자기 소파에 앉았다.


"소윤아. 엄마 저거 하셔야 되니까 아빠랑 들어가서 자자"

"엄마랑"

"엄마 저거 오래 걸려. 소윤이가 저거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엄마랑"


소윤이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또르륵 흘렀다. 아빠가 엄마와 동급이 되는 날이 오기는 하니.


"소윤아. 아빠가 들어가서 자다가 엄마 들어오시면 엄마가 소윤이 옆에 누우시면 되잖아"

"그래도 엄마랑 자고 싶어여"

"엄마는 지금 못 들어가신다니까. 오늘은 아빠랑 자야 돼. 엄마는 이따 소윤이 옆에 누우시면 되지"

"그럼 엄마 한 번 안고"

"그래"


소윤이는 진하게 아내와 포옹을 나누고 나랑 방에 들어갔다.


"소윤아"

"네, 아빠"

"소윤이 나중에 커도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하고, 뽀뽀도 많이 해 줘야 돼. 알았지?"

"네. 아빠"

"그래. 고마워. 잘 자"

"아빠도여"


소윤이는 금방 다시 잠들었다.


아까 자기 전에 소윤이 옷 갈아입히려고 위, 아래를 홀딱 벗겼는데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 서 있었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언젠가는 어색한 일이 되겠지. 시윤이야 어떻게든 꼬셔서 목욕탕이라도 데리고 가면 되지만, 소윤이 너는 그게 안 되잖아. 그때가 되면 오늘이 얼마나 그리울까. 잠든 소윤이를 보며 이런 감상에 젖다가 결국 끝은 이거였다.


'나는 못 볼 때 어느 늑대 같은 자식은 다 보고 있겠지'


으. 억울하다. 부들부들.


(장인어른,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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