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게 아니었다

19.12.03(화)

by 어깨아빠

누나를 이어 환자의 길에 접어든 시윤이가 밤 사이 좀 나아지길 바랐는데 아침에도 이마가 뜨끈했다. (나의) 미술 선생님에게 오늘 수업을 미뤄야겠다고 급히 카톡을 보냈다. 아침 먹으면서 시윤이한테도 비보(?)를 전했다.


"시윤아"

"네"

"오늘 원래 처치홈스쿨 가는 날인데 시윤이가 좀 아프고 힘들잖아"

"네"

"그래서 오늘은 엄마랑 누나만 처치홈스쿨 가고 시윤이는 아빠랑 집에 있을 거야"

"아아아앙. 나도 가꺼야아"

"시윤이는 아파서 갈 수가 없어. 아빠랑 집에 있어야 돼"

"아아아. 왜여어어"


아내와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온순한 반응이었다. 얘기를 듣자마자 싫다면서 펑펑 우는 걸 예상했는데 그 정도면 양호했다. 그 후의 설득도 순탄했다. 시윤이는 금방 수긍했다. 오히려 내가 신기해서 되물을 정도였다.


"시윤아. 아빠 말 이해했어? 시윤이랑 아빠는 집에 있어야 한다고?"

"네"

"누나랑 엄마는 처치홈스쿨 가고. 우리는 집이 있는 거야. 괜찮아?"

"네"


시윤이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아내와 소윤이를 떠나보냈다. 시윤이 신경 쓰느라 정신없었지만 나도 막막했다. 끝난 줄 알았던 간병 생활이 다시 시작되다니.


시윤이는 아침은 잘 안 먹었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아침 먹자마자 졸린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와 소윤이가 나가자마자 시윤이에게 슬쩍 제안했다.


"시윤아. 졸리지?"

"아니여어"

"뭘 아니야. 지금 눈이 엄청 졸린데. 들어가서 아빠랑 한숨 잘까?"

"시더여어"

"아니 시윤이 지금 몸이 아프고 힘들잖아. 이럴 때는 잘 먹고, 잘 자야 금방 낫는 거야. 아빠도 같이 누울 테니까 같이 한숨 자자"

"시더여어어"

"자고 일어나면 아빠가 비타민 한 개 줄게"

"비따민?"

"어. 자고 일어나면 바로. 그러니까 지금 아빠랑 들어가서 자자?"

"네"


시윤이가 먼저 잠들었고 그 뒤에 나도 잠들었다. 꽤 오래 잤다. 시윤이는 나보다 좀 먼저 깨서 엄지손가락을 즐기고 있었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가 11시였다.


"시윤아. 잘 잤어?"

"네"

"아직도 많이 힘들어?"

"아니여어"

"안 힘들어?"

"네"


이마를 짚어보니 아침처럼 뜨겁지는 않았다. 한쪽은 37.5, 한쪽은 36,5. 무엇보다 시윤이의 말과 행동이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평소 같았다. 방에 누워 있던 시윤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커다랗게 눈을 뜨고 내게 말했다.


"아빠. 아까 비따민 주기오 해짜나여어"

"아, 맞다. 그랬지. 그래 나가서 비타민 줄게"


비타민 사탕이 없길래 아내의 입덧 사탕을 꺼내며 얘기했다.


"시윤아. 비타민은 없고 그냥 이거 먹어"

"아빠아. 이거 엄마꺼자나여어"

"아 그렇긴 한데 시윤이가 먹어도 되는 거야"

"이거 임진해쯜때 먹으는 거 아니에여어?"

"맞는데 시윤이가 먹어도 돼"


(아내가 임신하면 입덧 사탕은 꼭 사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아내의 친한 친구에게 선물 받았지만. 너무나 맛있다.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 너무 끈적이지도 않고. 아내와 나는 입덧 억제의 효과는 모르겠고, 그저 맛에 감탄했다.)


저번에 소윤이를 데리고 집에 있었을 때는 집이 고요했었다. 소윤이는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기 때문에. 오늘은 집이 시끄러웠다. 시윤이가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혼자 놀 때도 중얼중얼 거리고, 혼자 놀지 않을 때는 계속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집에 남긴 게 무안할 정도로 멀쩡했다. 이마를 짚어보면 열은 아직 남아있는데 말과 행동에는 힘이 넘쳤다. 아픈 것치고 잘 놀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안 아픈 애였다.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계속 얘기하고 움직였다.


오늘도 증명이 됐다. 원래 둘인 집에 하나만 남으면 평화가 찾아온다. 시윤이는 본인이 뭘 하든 막거나 방해하는 사람(그게 강소윤)이 없으니 더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누나를 찾았다.


"아빠. 누나양 엄마늠 언제 와여엉?"

"아빠. 엄마양 누나가 너무 안 와여엉"


하루 종일 이 말을 제일 많이 했다.


나한테도 어찌나 애교를 많이 부리고 순한 양처럼 구는지. 엄마랑 누나 찾는 말 다음으로 많이 한 말이


"아빠. 따양해여어"


였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를 부르고는 저렇게 얘기했다. 덕분에 나도 아들이랑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소윤이 아팠을 때는 그야말로 간병인이었다면 오늘은 그저 보호자 정도였다.


자기 전까지도 열은 그대로였다. 밤이 되니 낮보다 약간 힘들어하기도 했고. 그래도 어젯밤에 39도를 넘기고 엄청 힘들어 한 걸 생각하면, 오늘처럼 지낸 것만 해도 감사했다.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아내가 집에 돌아온 순간 난 거실에 뻗어 누워버렸다.)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닌 하루였다. 자꾸 시윤이의 웃는 얼굴과 어리숙한 말투가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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