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하면 소윤이를

18.11.12(월)

by 어깨아빠

일어나기는 굉장히 일찍 일어났는데 (대중교통 출퇴근 시간에 맞춰) 도무지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우리 집에서 홈스쿨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고 아내는 차 쓸 일이 없을 거라며 그냥 차 타고 가라고 부추겼다. 그 덕에 오늘은 차를 타고 출근했다.


어제 타인의 방문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집을 방치하고 잤기 때문에 아내는 꽤 바빴을 거다.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 정도까지니까 홈스쿨 있는 날은 시간이 금방 간다


고 생각하는 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아내는 어떨지 모르겠네. 홈스쿨 이기는 한데 나는 아직 낮에 함께한 적은 없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흔치 않겠지만)


퇴근해보니 집에 아무도 없었다. 아마 505호에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아예 기별을 전하지 않는 건 너무 비겁하고 그렇다고 전화하는 건 뭔가 아쉬우니 카톡을 보냈다. 다행히(?) 내가 보낸 메시지 옆의 숫자 1 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아내는 오늘 운동하고 나서 같은 단지에 사는 언니를 만나 밥을 먹는다고 했다. 이내 카톡도 비겁한 것 같아 전화를 했다. 안 받았다. 됐다. 내게 주어진 몫은 다 한 거다. 아주 잠시였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물론 금방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고 아내와 아이들은 바로 돌아왔다.


아내는 애들 밥만 차려주고 나갔다. 어제와는 다르게 소윤이도, 시윤이도 웃으며 아내를 보내줬다. 아내를 보내고 났더니 시윤이의 낮잠이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소윤아. 시윤이 낮잠 언제 잤어?"

"어 밥 먹기 전에"

"밥 먹기 전에?"

"아빠. 예배를 먼저 드렸는지 밥을 먼저

먹었는지를 물어봐야지"

"어. 그래. 예배를 먼저 드렸어?"

"어. 예배를 먼저 드리고 그다음에 밥 먹었어"

"그럼 시윤이는 언제 잔 거야?"

"어. 예배드릴 때 잠들었고 밥 먹을 때 깼어"


아내가 나가기 전에 시윤이가 점심을 늦게 먹었다고 말해준 것까지 조합하면 그리 늦게 자지는 않은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는 505호 사모님이 주셨다는 빼빼로 한 봉지를 셋이 나눠 먹었다. 소윤이랑 나는 초콜렛 부분만 먹고 초콜렛이 묻지 않은 나머지 부분은 시윤이에게 줬다. 누나랑 아빠가 먹고 남긴 찌끄래기인데도 시윤이는 좋다고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었다. 소윤이는 빼빼로 대여섯 개를 한꺼번에 먹는 걸 즐겼다. 어쩜 이런 중요하지도 않고 굳이 닮지 않아도 되는 걸 나를 꼭 닮았는지.


그래도 이제 꽤 도움이 될 때도 많다. 똥냄새가 나길래 시윤이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바지를 벗겼는데 내 생각보다 수분기가 많은 똥이었다. 급히 소윤이를 불렀다.


"소윤아. 소윤아. 아빠 물티슈 좀"

"왜? 시윤이 똥 많이 싸서?"

"어. 얼른 갖다 줘"

"알았어여. 잠깐만여"


소윤이랑 시윤이 먹을 약 탈 때도 소윤이는 자기 약은 자기가 타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소윤아. 이거 먼저 5 있는 데까지 넣고 아빠 보여줘"

"알았어여. 아빠"


"아빠. 5 맞지?"

"오. 진짜 딱 맞췄는데? 그다음은 이거"

"이거는 10까지?"

"어. 맞아"


"아빠. 10 에 딱 맞췄어"

"오. 진짜네. 소윤이 진짜 잘하네"

"이제 가루약 주세여"


어찌나 손이 야무진지 가루약도 탈탈 털어서 잘도 섞는다. (나중에 아내가 오고 나서 알았는데 이렇게 열심히 타서 먹인 약이 이번에 지어온 약이 아니라 그전에 지어온 오래된 약이었다) 옷 갈아 입힐 때도 시윤이 옷이라고 꺼냈는데 가만 보니 아닌 것 같아서


"소윤아. 이거 소윤이 옷인가?"

"그거? 아빠 나한테 대 봐"

"자"

"이거 시윤이 꺼네"

"아. 그래?"


한 1-2년만 지나면 왠지 소윤이가 나보다 살림살이에 대해 더 바삭하게 알고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웬만한 물건의 위치는 나보다 소윤이가 더 잘 안다.


"엄마. 보고 싶은데"

"엄마 오면 소윤이 옆에 누우라고 할 게"

"그럼 지금은 아빠가 안아줘여"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잘 때는 잘 만지지도 못하게 하더니 요즘은 부쩍 나한테도 안아달라고 하거나 토닥여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시윤이가 조금 더 버텼다. 까딱하면 함께 잠들 뻔했는데 겨우 눈을 떠서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다른 월요일과 다르게 굉장히 일찍 집에 돌아왔다. 같은 단지 언니를 만나서 함께 밥 먹고 카페 갔다가 같이 돌아왔다고 했다. 비염도 너무 심하고 기침도 많이 나오고 몸 상태가 영 별로라 일찍 왔다고 했다.


"운동은 하고 갔어?"

"어. 아주 잠깐"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한 30분도 안 했을 것 같다. 역시 조만간 그냥 프리데이로 개명 절차를 밟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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