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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Jun 25. 2024

환자처럼 살면 환자가 된다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한의원 문을 열자마자 들어오신 할머니는 밤새 한숨도 못 잤다며 상담을 요청하신다. 평소에도 잘 체하고 깊이 못 주무시는 분이라 오늘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할머니의 눈빛이 불안정한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래서 먼저 물 한 잔을 따라 드리고, 천천히 말씀하시라고 했다.   


“저녁 밥 먹고 여기 저기 채널을 돌리는데, 한의사랑 의사들이 나와서 뇌에 대해서 말을 하더라고. 그런데 거기서 하는 말이 내 증상하고 딱 맞는거야. 그런 사람은 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치매일 수도 있으니까 병원에 가봐야 한 대.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밤새 머리도 아프고 잠도 안 오고 해서 혼났어~ 아침에 아들한테 전화하니까, 일단 한의원부터 가보라고 해서 왔어.”   

할머니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힐 것 같다. 차를 한잔 내러 드리고, 혈압도 재 드리고 맥도 봐 드리면서 일단 안심을 시켰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와 그때 병행한 치매 검사 결과를 상기시켜 드렸다. 그제서야 마음을 조금 내려 놓는 듯 하다. 심장을 편하게 하는 침을 놔드리고 한숨 주무시고 가시게 했다.   


하지만 늘 슬픈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다. 한달 후에 오셔서는 뇌혈관을 촬영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하시며 방긋 웃으며 말씀하신다. 이런 식으로 들어간 돈만 해도 내가 아는 것만 수백만원이다. 언제가 아드님이 슬쩍 지나듯 한 말들도 떠올랐다. 하지만 늘 불안을 안고 사느니 돈을 쓰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또 괜찮지 싶은 생각에 다행이다고 해드렸다.      


아는게 병이라는 말처럼 건강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보는 환자 일수록 건강에 관한 불안이 많은 경우를 자주 본다. 소화가 안되면 위암이 아닐까 걱정을 하고, 잠을 못자면 치매에 걸리기 쉽다는 말이 신경 쓰여 잠을 더 못 잔다. 앞서 이야기한 할머니처럼 머리가 아프면 뇌에 종양이 있거나 어디 혈관이 막힌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분들도 많이 봤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czu_czu_PL님의 이미지


이런 분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십여년 전에 만났던 한 환자가 떠오른다.  


그 환자는 30대 중반의 여성 분으로 내가 만났을 때는 항암제를 맞고 있는 상태였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찍 암으로 돌아가셔서, 자신은 건강을 관리하는데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암에 좋다는 것은 다 찾아 먹었고, 음식도 유기농 식재료만 써서 만들어 먹었고, 고기나 커피와 술을 먹고 마시는 것은 정말 일년에 몇 번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잠도 잘 자려고 노력했는데, 암 선고를 받았다면서 자신은 정말 억울하다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를 하면서 암이란 병에 대해 다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면서 이 환자는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어쩌면 평생을 암을 의식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생각과 감정 속에는 늘 암이란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고, 이것이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암의 가족력에 불을 붙인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태교를 할 때 절대 누구를 닮지 말라고 하면 그 사람을 똑닮은 사람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닮지 말라고 했지만, 실상 그 순간에 늘 그 사람을 떠올린 셈이고, 그것이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옛 조상들은 가능한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것을 보고 듣길 권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병을 더 많이 의식하면서 살수록 어쩌면 우리는 그 병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뇌가 판단할 때 이미 환자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다면, 언젠가는 진짜 환자가 되고 말 것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Toni Star님의 이미지


과거에는 정보에 어두운 것이 문제였지만, 현대인은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해서 문제다. 게다가 건강관련 정보 중에는 병, 그중에서 중병과 관련한 내용이 많다. 그러다 보니 그런 정보를 접하면 접할수록 어제까지는 건강했던 나도 오늘부터는 마치 환자가 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만약 어떤 채널의 건강정보가 나를 점점 더 불안하고 강박적으로 만든다면 그 채널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듯, 정보도 가려 먹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하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돌보는데 너무 소홀해서도 안되겠지만, 병에 걸릴까 늘 노심초사하며 예비환자로 살면 결국 환자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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