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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Aug 26. 2024

여름 밥상의 파수꾼 오이

텃밭 속에 숨은 약초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섯 살 위인 막내누나는 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새벽같이 아침을 먹고 나가야 했는데, 그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저도 같이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막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만 겨우 하고 먹는 밥맛이 좋았을 리는 없지만, 거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누나와 새벽밥을 먹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제 메뉴는 한가지로 정해졌습니다. 밭에서 따온 오이를 그대로 올려놓으면 고추장에 찍어 따뜻한 밥과 먹는 것이었지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고 새벽밥인데도 참 달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른 아침을 먹고는 달리 할일이 없었던 저는 집 바로 옆에 있는 학교로 갔습니다. 시골학교여서 아이들이 일찍 오는 편이었지만, 새벽밥을 먹고 학교 옆에 살았던 나보다 일찍 오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은 학교 문을 열고 맡던, 밤새 고여 있던 건물 냄새 그리고 아무도 없는 차가운 나무복도를 걷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이상스러울 정도로 참 즐거웠습니다. 복도를 밟을 때마다 나는 나무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밤새 잠들어 있던 학교를 제가 깨우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여름 날 아침, 텃밭에 나가 적당히 자란 오이를 땁니다. 마트에서 사서 먹는 오이와는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텃밭이 있다면 꼭 오이 모종 몇 개를 키우시길 권합니다. 



지금은 철에 관계없이 먹는 찬거리가 되었지만, 계절에 따라 살던 시절, 여름날 밥상을 생기 넘치게 해주던 오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이(호과, 胡瓜)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많이 먹으면 한기와 열기가 동하고 학질이 생긴다. 이것은 요즘 보통 먹는 오이를 말한다. 늙으면 누렇게 되므로 황과라고도 한다.


오이잎(호과엽) 

어린아이들이 잘 놀라는 증상을 치료하는데, 즙을 내어 먹인 다음 토하거나 설사하면 좋다.


오이뿌리(호과근) 

참대나 나무가시에 찔려서 생긴 독종에 찧어서 붙인다.


기온이 높고 땀이 많이 나는 여름에는 성질이 차고 물이 많은 오이를 먹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지금은 사철 내내 오이를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가을이나 겨울에는 자주 먹지 않는 게 좋겠지요. 


가을이 되어 말라가는 오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이 떠올라 어머니와 이야기하면서 웃고, 막내누나에게도 전화를 해서 또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 시간, 시들어가는 오이가 제게 준 마지막 선물입니다.


@생활한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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