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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Sep 11. 2024

공복감이 우리를 살린다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저는 본 영화를 또 보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중간부터 봐도 앞의 내용을 알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고, 전에는 모르고 지나갔던 영화 속에 숨겨진 다양한 암시와 장치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다시 봐도 질리지 않고 좋습니다. 


얼마 전에는 휴일에 우연히 영화 ‘루시’를 다시 봤습니다. 영화의 구성이 조금 엉성하고, 인간이 뇌의 15%밖에 이용하지 못한다는 잘못된 설정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또 재밌게 봤습니다. 이번에 볼 때는 뇌과학자로 연기한 모건 프리먼의 강연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영화 <루시> 중에서


뇌를 최대한 이용하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가 주된 내용이었지만, 제가 좀 더 집중했던 것은 그 앞의 내용이었습니다. 생물 진화의 과정을 유전자의 전달이란 측면에서 바라보면 먹이나 환경이 풍요로울 때는 생물은 생식에 열중하고, 여건이 좋지 않으면 개체의 영속성 즉, 자신의 생존에 집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체는 영원히 살 수 없으므로 한 개체의 생명현상은 좀 더 오래 생존하는데 초점을 두게 된다고 합니다. 


생식에 열중하거나 생존에 집중하는 두 가지 전략은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고, 이를 통해 생물은 영원한 삶을 산다고 모건 프리먼은 말했습니다. 


이 원리는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세포 수준에서 생식은 세포의 분열을 의미하고 생존은 현상 유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의 생애주기를 볼 때 성장의 시기에는 생식과 세포의 분열에 열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중요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작업을 완료한 후에는 생존에 초점을 두는 생활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고령화와 환경의 악화에 따라 급속하게 늘어날 것으로 생각되는 암이 걱정된다면, 40대 이후에는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암세포의 특징인 끝없는 분열은 지속적인 생식과 같은 말입니다. 먹을 것이 풍부한 풍요로운 환경에서 개체는 생식에 열중한다는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여건이 좋지 않으면 생명은 생존을 위해 자신을 리셋한다고 했습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자발적으로 몸 속 환경을 조금 궁핍한 상황에 빠뜨리는 겁니다. 이를 통해 내 몸 속 세포들이 생식에서 생존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에 관해 진화생화학 교수인 닉 레인은 그의 책 <산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칼로리 제한의 최종 효과는 결국 스트레스 내성을 키우는 것이다. 혈당량이 떨어지고 인슐린 농도도 따라서 떨어진다. 대사작용의 방향은 성(性)에서 신체 유지 쪽으로 바뀐다. -(중략) - 칼로리 제한으로 세 가지 효과가 있었다. 첫째, 세포의 내부구조가 튼튼해졌다. 거의 모든 구조 단백질의 합성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졌다. 둘째, 종양괴사인자 TNF-α나 일산화질소 합성효소 등 염증을 촉진하는 단백질의 합성이 줄어들었다. 셋째, 산소 호흡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줄어들었다. 특히 시토크롬c는 1/23밖에 되지 않았다. 이 마지막 효과는 대사율 감소와 통한다. 즉 천천히 살고 늦게 죽는 것이다.


‘조금 부족한 듯 먹어라’, ‘한 숟가락을 남겨라’, ‘팔푼八分 정도만 먹어라’라는 건강에 관한 격언은 단순히 검소함을 강조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기적인 단식이나 간헐적 단식이 주는 긍정적 효과도 위에서 말하는 칼로리 제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물론 이것은 음식 자체가 건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조금 부족한 듯 먹는 것 외에도 전통적인 건강법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말을 적게 하고, 성욕을 절제하는 것, 과음과 과식을 피하고, 음식을 담박하게 먹는 것, 그리고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근심 걱정하지 말라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런 것 없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취향이자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습니다. 생애주기에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면, 몸과 감정에 가해지는 과부하를 덜어내는 것이 중한 병을 피하고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먹고 안 먹고와 같은 단편적이고 이벤트와 같은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의 장르가 바뀌어야 합니다. 스팩타클한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삶보다는, 잔잔한 로맨틱 코메디 같은 영화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더 유리합니다. 


명상 지도자로 유명한 래리 로랜버그의 젊었을 적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마침 미국을 방문한 크리슈나무르티에게 혼자서 할 수 있는 수행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명상은 배웠지만 호흡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크리슈나무르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일단 집을 정리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것에 집중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계속 뭔가를 더 많이 해야 더 나아지고 좋아질 것이란 환상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정보들이 그것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당신은 이런 노력이 부족하다.” “이것을 꼭 해야 한다.” “이것만 하면 다 된다.”
“이것을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 “이것을 먹으면 큰일 난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를 점점 더 궁핍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무지하고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인생에서 그리고 건강에서 무엇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집부터 정리하라고 말한 것처럼, 몸과 마음에서 과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때가 찾아 옵니다. 저는 그 때가 40이후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더 먹고 더 하려고 하기보다, 식탁과 생황방식에서 과한 것을 조금씩 덜어내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조금 부족한 듯한 삶이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의 생존의지를 일깨워 줄 것입니다. 




삶의건강을생각하는생활한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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